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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과 웨딩 케잌

Posted February. 16, 2015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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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낡은 LP판을 꺼내 턴테이블에 올렸다. 뒷면의 2번 트랙. 카트리지 바늘이 음반의 골에서 청춘의 감성을 끄집어낸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밤새 잠 못 이루고 깨어나 창밖을 내어다 보니/사람은 보이지 않고 외로이 남아있는 저 웨딩케잌/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40여 년 전 20대 초였던 송창식 윤형주의 싱그러운 목소리가 영혼을 흔든다. 윤형주는 워낙 미성이지만 성대 수술을 받고 창법을 바꾸기 전 젊은 송창식도 목소리가 참 서정적이다. 순수의 미학이다.

주말에 트윈폴리오를 다룬 영화 쎄시봉을 봤다. 국제시장을 눈물을 훔치며 본 뒤라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발동했다. 궁핍한 시절이었어도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은 그립고 아쉽기 마련이다. 국제시장의 뭉클한 감동과는 거리가 먼 사랑 이야기. 그래도 영화 속 노래들을 감상에 젖어 듣던 때의 추억이 아련하다.

영화 끝 장면에도 흐르는 웨딩 케잌의 원곡은 미국의 여가수 코니 프랜시스가 부른 같은 이름의 곡이다. 모든 여자들은 웨딩 케잌과 함께 수많은 기쁨과 눈물이 온다는 것을 알아요. 결혼이 낭만이 아니라 현실임을 밝고 경쾌한 멜로디에 담은 원곡을 작사가 홍현걸이 슬프고도 감미롭게 번안()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노랫말이 듣는 이들의 감정이입을 부른다. 애틋한 첫사랑의 기억이 마치 내 일인 듯, 아닌 듯.

두 영화의 주인공 세대는 지긋지긋한 현실 속에서도 경제 성장에 힘입어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그때를 낭만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부모 세대와는 달리 일자리 때문에 결혼, 출산도 미뤄야 하는 요즘 젊은이들도 먼 훗날 코끝이 찡해 이 시절을 되돌아볼까. 혹시 현실에 치인 채 친구의 웨딩 케잌을 보며 부러움에 한숨짓던 기억만 나는 건 아닐까. 사랑은 모든 시대에 있지만 희망도 있는 건 아니니. 가난한 젊은 연인들의 미래에 부디 햇살이 가득하기를, 더 나은 세상을 열어주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빌었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