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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자식 둔 죄책감에 효자 잃고도 속울음만

승무원 자식 둔 죄책감에 효자 잃고도 속울음만

Posted May. 02, 2014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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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밤, 엄마는 꿈을 꿨다. 엄마는 망망한 바다,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댔다. 물에서 나오려 몸부림을 쳤다. 눈을 떠보니, 전남 진도체육관이었다. 우리 아들, 꿈에서 한 번만 보면 좋겠는데 안 나타나요. 내가 물에 빠지는 꿈만 꾸고.

황정애 씨(55)의 둘째 아들 안현영 씨(28)는 외주업체에 소속된 계약직 승무원이었다. 2012년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세월호를 탔다. 서빙, 승객 관리, 행사 MC.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다 지난해 8월 계약직이 됐다. 아르바이트와 다를 건 없었다. 배를 타며 정식 취업을 준비했다.

세월호 출항 하루 전날 아들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화분 하나 내 방에 둘 테니까 엄마가 키워줘. 무슨 화분인데? 잎이 길고 삐죽하네. 난초인가 보네. 잎 사이로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엄마, 난도 꽃이 펴? 그럼. 꽃이 예쁘게 피지. 도란도란 대화가 오갔다. 화분은 아들의 마지막 선물이 됐다. 화분은 학생들을 구하려다 실종된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46)가 준 것이었다. 사무장은 책임감 강한 안 씨를 아꼈다. 안 씨는 군복무 시절 사단장 표창을 받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 사무장님이 화분 두 개를 사서 하나씩 나눠 가졌대요. 자기들 가는 거 알고 그랬나 봐요.

세월호 출항 8시간 전 아들은 전화를 한 번 더 걸었다. 제주에 도착하면 줄 테니 20만 원만 보내 달라고 했다. 평소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던 아들이었다. 아들은 감사해용. 내일 줄게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는 고맙긴 뭘, 우린 가족이니까O O 아들! 수고해라고 답했다. 마지막 문자였다. 저승길에 노잣돈 하려고 그랬나 봐요. 더 줄 걸 그랬어요.

둘째 아이로 딸을 원했던 엄마는 어릴 적 한때 아들을 딸처럼 키웠다. 어릴 때 생김새가 예뻤어요. 내가 분홍색 내복 입히고 핀도 꽂아주고 그랬어요. 여기서 아들 기다리다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태어나서 기저귀 갈던 거, 편식하는 거 야단치던 거 다 떠올라요. 내 눈엔 지금도 아기 같고.

첫날 그도 화를 냈다. 해경에게 울며 소리쳤다. 잠수사한테 물에 들어가서 망치로 배를 두드리라고 하세요. 그 소리 들으면 애들이 희망을 안 잃을 거 아니에요.

그 다음엔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를 원망했다. 다시는 제사를 안 지낼 거라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손주를 데려갈 수 있냐고.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몰라요.

그 뒤부터는 죄인처럼 지냈다. 체육관에 머물며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다. 아들이 승무원이라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속내를 수첩에 털어놨다. 자식 잃은 어미로서 큰 목소리로 우리 아들 승무원인데 실종됐어요!라는 말도 못 하고, 우리 아들 너무 불쌍해서.

200구 넘는 시신이 발견됐지만 아들은 없었다. 침몰 첫날 새것이었던 수첩은 어느새 일기, 아들에게 쓴 편지로 빼곡히 들어찼다. 바다에서는 내 얘기가 안 들릴 거 같아서 쓰는 거예요. 우리 아들, 생김새는 예쁘지만 용기도 있고 의리 있고 남자다웠어요. 그 애는 아이들 구하려다 같이 못 나왔을 겁니다. 우리 아들은 정직한 사람이었거든요.

진도=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