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과 세종연구소를 통합해 미국의 헤리티지재단 같은 권위 있는 싱크탱크를 만들자는 논의가 무르익었다. 한경연은 경제, 세종연은 외교안보로 특화돼 있다. 더구나 한경연은 전경련의 영향권과 정치 바람에서, 세종연은 재원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어 시너지효과가 분명해 보였다. 박지원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경련 관계자들을 불러 호통을 쳤다. 진보 연구원들 다 내쫓고 보수 연구기관 만들겠다는 거냐. 그는 나가는 이들을 다시 불러 세웠다. 계속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재벌들을 청문회에 세울 것이다. 통합은 무산됐다.
전경련이 한국규제학회와 19대 국회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한 모니터링을 한다는 양해각서(MOU)를 18일 체결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지나친 규제를 쏟아낼 것에 대비한 것이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가만있을 리 없다. 즉각 전경련이 헌법을 짓밟고 있다며 경제민주화를 막는 오만방자한 일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모든 조치를 다 하겠다고 경고했다. 놀란 전경련은 의원입법 지원이지, 의정 활동을 막을 의도는 없다고 해명에 바쁘다.
박지원만큼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오래, 고루 누리는 이도 흔치 않다. 2년 전 81석의 의석으로도 전경련을 주저앉혔는데, 127석 의석수에다 야권연대라는 전력까지 갖춘 지금 전경련을 초토화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제대로 규제받지 않는 시장이 국민에 피해를 주듯이, 제대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더 큰 피해를 준다. 특히 약자라는 미명아래 커튼 뒤에서 휘두르는 야당 권력은 더 위험할 수 있다.
18대 국회에 제출된 규제 법안 1986건 중 93%가 의원발의 법안으로 분석됐다. 부처 심사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정부 법안 같은 검증장치가 없는 탓이다. 우리나라보다 의원입법 비중이 훨씬 낮은 독일도 지난해 의원입법에 대한 심사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전경련 격의 프랑스 메데프(Medef)의 로랑스 파리소 회장은 최근 대통령의 증세 정책에 대해 경제를 경직시켜 고립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지원으로부터 전경련과 내부자와 다름없는 학회라고 비난받은 규제학회 회원들은 이제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규제에 나서야 할 것 같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