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검사를 받다 보면 검사업무를 숙지하고 우리에게 물어보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검사 인력의 자질에도 편차가 너무 심하다.(A시중은행 부행장)
금감원의 전현직 직원이 뇌물수수 등으로 5명이나 구속됐다는 소식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일어난 것도 아니지 않으냐.(B시중은행 임원)
금융감독원이 조직, 인사, 윤리의식, 업무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쇄신방안을 내놓기로 하자 금융권 관계자들은 진작 했어야 했는데 늦은 감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금융권은 오래전부터 금감원 직원들의 비리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경고를 해왔다. 감독권한을 앞세워 피감 금융회사를 윽박지르거나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취임한 지 1개월 된 권혁세 금감원장은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감독당국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대대적 물갈이 인사가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구태와 구악부터 청산한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가 구태()와 구악()이라는 자극적인 용어까지 동원하면서 대대적인 물갈이 방침을 밝힌 것은 금감원의 위기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본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이번이 환골탈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게 신임 금감원장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의 첫 번째 대상은 구태의 전형인 끼리끼리 문화의 청산이다. 금감원은 1999년 1월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기관이 통합하면서 출범했다. 당시 각각 4 대 3 대 2 대 1의 인력 비율로 합쳐졌고 은행, 증권, 보험, 비()은행(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분야의 검사와 감독을 나눠 맡았다. 문제는 출범한 지 13년째가 됐지만 화학적 결합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원장이 2000년 인사에서 인위적으로 각 업무영역에서 30%씩 인력을 떼어내 다른 곳으로 보내라고 지시했으나 조직 이기주의에 가로막혀 유야무야됐다. 서로 상대 업무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은 결과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4개 기관이 통합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영역 간 벽이 너무 높았다며 권역별로 일을 하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 봐주기 문화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업무영역별 부원장들이 실질적으로 행사하던 인사권한을 금감원장에게로 환수하겠다는 방침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해당 부원장에게 인사를 맡길 경우 화학적 결합은 요원하고 제 식구 챙기기 식의 병폐만 심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금융시스템의 불안 요인으로 떠오른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카드사들의 과당 경쟁 등 비은행 분야의 현안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권역별 칸막이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금감원 내부의 판단이다.
최정예 검사요원 전면 배치
개혁의 다음 대상은 책임지지 않으려는 복지부동의 문화로, 인력 재배치를 통해 해결할 방침이다. 실력은 없으면서 금융회사 관계자들에게 윽박지르는 식의 검사를 하는 이른바 구악들을 후선으로 모두 빼내겠다는 구상이 나온 배경이다. 대신 우수하면서 청렴하다고 평가받는 인력들을 검사라인의 최전방으로 배치해 현 정부 출범 이후 약화된 금감원의 검사기능을 복원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검사와 관련한 부정과 비리는 신상필벌, 일벌백계의 원칙을 적용해 강력한 개혁 시그널을 줄 방침이다. 권 원장은 이와 관련해 금융기관 검사를 하다 보면 훗날 책임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보니 에이스들이 잘 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금감원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게 검사 기능인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져 왔다고 밝혔다.
한편 권 원장은 28일 금감원에서 열린 맞춤형 서민금융 상담행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저축은행 영업정지 전 부당하게 인출된 예금을) 최대한 환수할 수 있도록 대형 법무법인에 법률검토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허태열 위원장(한나라당)도 불법 인출 예금을 전액 환수해야 한다는 데 여야 간 합의가 돼 있다며 법을 개정해서라도 환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