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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작은댁의 아들이었다

Posted July. 30, 201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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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는 평생 작은댁으로 사셨다.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 출생과 어머니에 관해서 말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명예를 지켜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을 감춘다 해서 어머니의 명예가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고, 나 또한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29일 출간됐다. 김대중 자서전(삼인출판사)에는 김 전 대통령이 생전 한 번도 말한 적 없던 출생의 비밀을 비롯해 자신을 끊임없이 탄압했던 정적()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소회,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 남북 정상회담 뒷이야기,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심경 등이 담겼다. 자서전은 2004년부터 김 전 대통령이 41차례에 걸쳐 구술한 녹취와 일기 등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서거 1주기(8월 18일)를 기념해 30일부터 시중에 판매된다.

김 전 대통령은 2004년 8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표가 자신을 찾아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말씀 드립니다라고 말한 일을 소개하면서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사과는 독재자의 딸이 했지만 정작 내가 구원을 받는 것 같았다고 썼다.

민주화 동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1987년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데 대해선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 너무도 후회스럽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단일화했어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저들의 선거 부정을 당시로서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덧붙여 단일화 실패를 민주진영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선 과거 건설회사에 재직할 때의 안하무인 식 태도를 드러냈다 실용적인 사람으로 알고 대세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는데 내가 잘못 본 것 같다 실용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선 한국 외교 사상 가장 최악의 실패작을 다시 되풀이할 가능성앞선 두 정부에서 이룩한 10년의 공든 탑이 무너지려는가 등의 표현을 써가면서 이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대한 철학이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 이제 민의를 따르지 않는 독재자는 민의로 퇴출시켜야 할 때가 됐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개헌의 필요성도 거론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74남북공동성명의 예를 들면서 임동원(당시 대통령특보), 김용순(당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자고 했지만 적극 설득해 두 정상 명의로 선언문이 작성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 김 국방위원장이 대통령이 전라도 태생이어서인지 무척 집요하군요라고 말해 김 위원장도 전주 김씨 아니오라고 응수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김 위원장이 아예 개선장군 칭호를 듣고 싶은 모양입니다라고 하자 개선장군 좀 시켜 주시면 어떻습니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덕 좀 봅시다라고 다시 응수했다고 회고했다.

세 아들인 홍일, 홍업, 홍걸 씨가 로비 사건 등에 연루돼 기소되거나 구속된 데 대해선 억울하다며 아버지로서의 절절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조수진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