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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도발자는 내버려두고 군 문책부터 할 순 없다

[사설] 도발자는 내버려두고 군 문책부터 할 순 없다

Posted May. 08, 201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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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을 비롯한 일부 야당은 천안함 사태 초기 대뜸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 해임부터 주장했다. 천안함 침몰이 북의 소행이라는 단서가 속속 나옴에 따라 지금은 주장의 기조가 약간 달라졌지만 정권의 책임, 군의 책임을 거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고, 거기에다 위기관리마저 소홀히 했으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제 밤 여야 5당 대표의 지방선거 관련 정책토론회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왔다. 어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대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대통령부터 함장까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비난했다.

사전 대비나 사후 대처에서 군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천안함 사태의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고 감사원의 집중 감사도 실시되고 있으니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머지않아 낱낱이 드러날 것이다. 문책이 필요하다면 그 때가서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도 지금 단계에서 문책론을 앞세우는 것은 그 동기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천안함 사태 발발의 책임을 우리 내부로 돌려 북의 책임을 물타기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진정 국가안보의 중요성 때문에 책임론을 들먹이는 것이라면 가해자의 잘못을 먼저 준엄하게 추궁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천안함을 침몰시킨 공격의 수단과 심지어 공격의 주체까지 구체적으로 특정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문책론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가해자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가해자가 작심하고 사건을 저질렀는데도 오히려 피해자한테 왜 당했느냐 네가 잘못해서 당한 것 아니냐고 몰아붙이는 식이다.

그들은 심지어 아직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북의 소행으로 몰지 말라면서 북을 두둔하기까지 한다. 책임론 거론이 국가안보를 중시하는 애국충정의 발로라기보다 맹목적인 북한 편들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제에 정치권이 무책임하고 군을 흔들어대는 행태도 지양돼야 한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북이 먼저 총을 쏘더라도 맞대응을 자제하라는 식의 지시까지 있었다. 이래서야 어찌 군에 대해 국가안보를 책임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전쟁행위에 버금가는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도 없이 내부 책임만 따진다면 북에 두 번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