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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할머니도 삶의 활력소 공 뻥뻥

Posted January. 14, 201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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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팬 주름살이 연륜을 말해준다. 반바지 대신 치마를 입은 이도 있다.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만 보면 과연 골문까지 갈 수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열정만큼은 국가대표 축구선수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60대 할머니도 젊은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600km가량 떨어진 흑인 빈민가엔 세계에서 유일한 축구 리그가 있다. 할머니 리그다. 지역 내 8개 팀이 참가하는 이 리그에서 60세 할머니는 젊은이 축에 속한다.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땀을 흘린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마을마다 진풍경이 벌어진다. 뜨개질, 청소 등 집안일을 일찍 마친 할머니들이 일제히 운동장에 모인다. 운동장이라고 해봤자 덩그러니 세워진 엉성한 골문에 거친 모래밭이 전부. 그러나 승부에 양보란 없다. 할머니들은 경기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어깨를 맞대고 승부를 겨룬다. 물론 할머니 리그의 특성상 상대에게 거친 파울을 하는 건 금물이다.

아들, 며느리, 손자 등도 이날만큼은 열성 축구팬이 돼 할머니를 응원한다. 다른 할머니들보다 발이 빨라 별명이 마라도나인 베카 마실루 할머니(65)는 이렇게 말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바탕 축제가 벌어집니다. 운동장에 있을 땐 진짜 마라도나가 된 기분이죠.

형편은 열악해도 마음만은 행복해

격렬한 운동이 몸에 해롭지는 않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할머니들은 축구 때문에 건강이 좋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한 할머니는 예전엔 고혈압, 당뇨 등으로 고생했지만 이젠 의사가 어떻게 건강이 이렇게 좋아졌냐며 놀랄 정도다며 웃었다. 노라 마흐베라 할머니(83)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데다 삶의 활력소가 생기면서 모두 10년은 젊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만 해도 축구를 하기 전엔 뇌중풍으로 6번이나 쓰러졌지만 지금은 이렇게 뛰고 있지 않냐며 웃었다.

할머니 리그의 형편은 열악하다.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낸 성금과 주민들의 지원으로 유지되지만 여전히 축구공 하나 사기 힘들어 꿰매서 쓰고 있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함께 공을 차고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 무보수로 팀을 맡은 한 코치는 이렇게 얘기했다. 젊은 선수들을 가르칠 땐 스트레스도 받고 돈도 필요하죠. 하지만 할머니들과 함께 있을 땐 다릅니다. 실컷 웃고 즐기다 보면 어느새 걱정이 사라지죠.

할머니들의 삶에 최근 새로운 즐거움이 더해졌다. 6월에 열리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자국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사실에 할머니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80세가 넘는 한 할머니는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매일 밤 기도합니다. 6월까지는 살 수 있게 해달라고요.



신진우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