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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범죄 재판서 첫 증언 인정

Posted October. 06, 200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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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A지방검찰청 영상녹화 조사실. 12세 소녀 B 양이 피해자 조사를 받기 위해 앉아 있었다.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김미영 진술분석관이 내가 무슨 일 때문에 내려왔는지 알고 있니라고 질문을 던졌지만, B 양은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난 너처럼 안 좋은 일을 겪었던 언니나 동생들을 만나러 다니는 사람이야. 어떤 사람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났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김 분석관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가자 B 양은 어깨를 들썩이며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20분쯤 시간이 흐른 뒤 B 양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김 분석관은 지금부터 너한테 일어났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라고 물었다. B 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B 양은 의붓아버지 C 씨가 자신에게 저지른 일을 차근차근 기억 속에서 꺼내놓았다. 5년 전 어느 여름날 저녁 거실에서 C 씨가 자신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추행한 일부터 이후 1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반복됐던 끔찍한 일들을.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김 분석관은 다시 구체적인 순간을 지목하며 그때 어떤 기분이 들었지? 아빠의 손은 그때 어디 있었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B 양의 머릿속에서는 잊고 지냈던 일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의붓아버지의 입에서 풍기던 시큼한 홍어 냄새가 싫었던 기억, 갑작스러운 일을 겪고 당황해 욕실로 뛰어갔던 일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B 양은 그렇게 1시간 40분 동안 김 분석관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 조사가 끝난 뒤 김 분석관은 조사실 창문을 열며 나쁜 기억은 마음에 담아두면 병이 돼. 언니가 나쁜 기억은 모두 갖다 버려 줄게라며 B 양을 위로했다.

당시 C 씨는 B 양의 어머니 D 씨가 자신의 범행을 뒤늦게 알고 문제 삼자 돈을 받아내려는 허위 고소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B 양도 너무 어릴 때 당한 일이어서 구체적 정황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B 양이 김 분석관과의 면담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히 기억해내자 C 씨는 결국 법정에 섰다.

심리학자를 법정에 출석시켜 김 분석관이 실시한 인지면담 기법과 이를 이용한 진술분석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검증까지 한 끝에 재판부는 C 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C 씨는 올해 7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국내 법정에서 인지면담 조사를 통해 작성된 조서와 진술분석 보고서가 처음으로 증거로 채택된 것이다.

대검은 현재 김 분석관 1명뿐인 진술분석관 채용을 더 늘리고, 검사와 수사관들에게도 면담기법 교육을 할 계획이다.



전성철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