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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도 못친다 공포의 100km 너클볼

Posted July. 15, 200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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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저리그 보스턴의 베테랑 투수 팀 웨이크필드(43). 그는 불혹이 넘은 나이에 처음 올스타에 선정돼 15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출전한다. 그는 전반기에만 11승(3패)을 거둬 메이저리그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 있다.

#2. 지난해 11월 고교 2년생이었던 요시다 에리(17)는 간사이 독립리그 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지명받아 고베의 유니폼을 입었다.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여성 선수 탄생이었다.

두 투수가 나이와 성별 핸디캡을 극복한 것은 너클볼(Knuckle ball) 덕분이다. 내야수로 마이너리그에 입단했던 웨이크필드는 그 실력으로는 더블A 이상 가기 힘들다는 한 스카우트의 충고를 받은 뒤 너클볼 투수로 변신해 19시즌 동안 189승을 거뒀다. 에리도 너클볼이 아니었다면 프로 선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구 중의 마구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교환하는 이유는 어떤 공을 던질지 타자가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웨이크필드나 에리는 보란 듯이 너클볼을 던진다. 타자도 뻔히 알지만 알고도 잘 못 치는 게 너클볼이다.

너클볼은 검지와 중지의 관절(너클)을 공에 대고 밀듯이 던지는 구질이다. 웨이크필드는 검지와 중지 손톱을 이용한다. 이렇게 던지면 공은 회전을 하지 않지만 타자 앞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다. 던지는 투수도 받는 포수도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래서 마구() 중의 마구로 꼽힌다. 웨이크필드의 너클볼 구속은 시속 100km 안팎이다. 150km의 공도 쉽게 치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나비처럼 춤추는 이 공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가끔 120km대의 빠른 직구를 섞으면 대책이 없다.

너클볼의 명암

너클볼은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어 포수도 공을 받기 힘들다. 보스턴 포수 제이슨 베리텍은 2005년 포스트시즌에서 곧잘 웨이크필드의 공을 뒤로 빠뜨렸다. 베리텍은 너클볼을 잡는 것은 젓가락으로 파리를 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단은 너클볼을 받기 위한 전담 포수를 따로 두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덕 미라벨리가 공을 받았고 올해는 조지 코타라스가 전담 포수가 됐다.

너클볼은 기온과 습도, 고도, 바람 등에도 영향을 받는다. 흐린 날엔 너클볼이 잘 먹히지만 고지대에선 배팅 볼이 되기도 한다. 웨이크필드 역시 잘 던지는 날엔 천하무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난타당하기 일쑤다. 너클볼은 다른 변화구와 달리 팔꿈치나 어깨에 거의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한 번에 200300개 투구도 거뜬하다. 명예의 전당 회원인 필 니크로는 48세까지 뛰며 318승을 올렸다.

한국 프로야구의 너클볼 투수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아직 전문 너클볼 투수가 나오지 않았다. 장정석 히어로즈 1군 매니저는 2003년 KIA에서 외야수로 뛰다 너클볼 투수로 전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장 매니저는 결국 제구가 문제였다. 공의 움직임은 좋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었다고 했다. 히어로즈 마일영은 지난해부터 너클볼을 던지지만 한 경기에 2, 3개가 고작이다. 이 공을 많이 던지면 직구 스피드가 줄기 때문에 코치도 선수도 많이 던지길 원하지 않는다.

현재로선 LG의 왼손 투수 김경태가 전문 너클볼 투수에 가장 근접해 있다. 주로 중간 계투로 나서는 그는 절반 정도를 너클볼로 던진다. 그는 무조건 한가운데를 보고 던진다. 아직까진 다듬는 중이다. 꾸준히 2년 정도 연습하면 전문 너클볼 투수로 변신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선택받은 자만 던진다

너클볼 투수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손톱은 곧 생명이다. 김경태만 해도 검지와 중지 손톱이 여러 차례 부러지고 손톱 안엔 멍이 들곤 했다. 공을 제대로 찍어 누르기 위해 타원 모양의 손톱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김경태는 아침마다 면도를 하듯 정성스레 손톱을 평평하게 다듬는다. 3일에 한 번은 손톱 영양제도 발라준다.

이런 수련 과정을 거쳐도 너클볼 투수로 성공하는 선수는 선택받은 소수에 불과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너클볼은 대다수 선수들에게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