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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잡 킬

Posted May. 20, 200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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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정부는 22만 명의 실업을 예방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잡 셰어링(Job sharing일자리 나누기)을 지원했다. 공기업과 은행 대기업들이 대졸초임을 삭감해 마련한 재원으로 채용을 늘렸고 중소기업도 23%가 참여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경제위기를 이겨낼 수는 없다. 일부 지표에서 경기가 바닥권에 닿았다는 해석이 나오자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말 잡 셰어링과 구조조정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구조조정 불가피론에 무게가 실린다. 윤 장관은 15일 기업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면서 구조조정 없이 지나가려는 기업들의 안이함을 지적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기업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 경제체질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홈페이지(kdi.re.kr)의 핫이슈란 맨 위에는 경제위기 금융위기 대신 기업구조조정 항목이 자리 잡았다.

인력 감축은 구조조정의 핵심 사항이다. 미국에서는 불경기가 닥치면 대규모의 일자리를 날려버리는 잡 킬(Job kill)이 무자비하게 단행된다. 그러다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채용한다. 경쟁력이 약한 기업의 퇴출 과정에서 실업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전후 5개월 사이에 실업자가 45만 명에서 138만 명으로 무려 93만 명 증가해 나라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 때문에 구조조정에 대한 반감이 크지만 글로벌 위기 속에서 우리만 흠집 하나 없이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는 없다.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작년 세계은행 평가에서 181개국 중 152위로 최하위권에 속하고 이것이 국제경쟁력 하락의 주범이다. 현대자동차 등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연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해 잡 킬을 막는데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구조조정이 없으면 회사가 킬될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 중심의 노동시장을 온존시키면서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일시적 일자리 감축을 무릅쓰고라도 노동시장의 관행을 바꿔야 훗날 더 좋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

홍 권 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