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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만 생각하면 주식형 우울증 급증

Posted October. 28, 200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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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신영희(54) 씨는 지난해 남편 몰래 펀드에 5000만 원을 넣었다가 최근 주가 폭락으로 원금의 75%를 날렸다. 남편 사업도 시원찮아서 집을 팔려고 내놓았지만 임자가 없어 주택대출금도 연체하고 있다. 신 씨는 깊은 잠을 못자고 3, 4번씩 깬다. 낮에도 불안감이 몰려와 가슴이 답답하다. 자녀들과 얘기하다가 벌컥 화를 내기도 한다.

신 씨는 갱년기 우울증으로 지난해 한 번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에 비하면 지금의 우울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며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우울증 환자 20% 증가=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국내 주가 폭락과 집값 하락 등으로 인한 불안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대학병원 정신과 환자 중 20% 정도가 자산가치 하락으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하루 외래환자 2030명 중 5명은 주가가 떨어져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무기력감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영업사원인 김기동(33) 씨는 11월 결혼 준비를 위해 매월 80만 원씩 넣는 적립식 펀드와 주식에 2년간 투자했다. 그러나 펀드와 주식이 반토막이 나면서 3000만 원을 날려 울상이다.

김 씨는 서울 근교에 집을 구하지 못하고 충남 천안에 전세를 얻었다며 마음이 불안하니까 약혼녀와 자주 싸우게 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과장인 손모(38) 씨는 회사 매출이 급감해 조만간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바늘방석이다. 다른 부서와 중복 업무가 많은 손 씨의 부서는 인력감축 우선순위다. 좀 더 버틸 것인지, 조금이라도 더 퇴직금을 많이 받고 명예퇴직을 신청할 것인지 고민하느라 신경이 예민해져 사소한 일에도 울컥 화가 치민다고 한다.

하태현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불안감이 몰려오면 자율신경계가 각성돼 예민하고 초조해진다며 일시적 불안감은 항불안제로 안정시킬 수 있지만 지속되면 극심한 정신적 공포감에 시달리는 공황증세, 강박 등 병적 불안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나만 겪는 일 아니다=정신과 전문의들은 우울증과 불안감을 떨치려면 주위 사람들과 함께 모두가 힘들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남궁기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우울증은 내가 못나서 실수를 했고, 어떻게 해도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서 비롯된다며 본인만의 잘못이 아닌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고민해야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민을 붙잡고 있기보다 일정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조용한 곳에서 며칠 쉬면서 안정된 마음으로 상황을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심한 불안감이 엄습하면 5분 정도 눈을 감고 쉬면서 천천히 호흡을 한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고 심리적 위안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남궁기 교수는 생활자금을 모두 주식에 털어 넣었다가 큰 손실을 봤을 때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불안해질 수 있다며 그러나 그 정도로 절망감을 느끼고 미래가 어둡게만 느껴질 경우 즉시 정신과를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지 김윤종 nuk@donga.com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