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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고시원이 고단한 서민들 삼켰다

Posted July. 26, 200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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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고시원은 미로식 복도 양쪽에 6.0m 크기의 방 66개가 벌집처럼 자리 잡고 있어 인명 피해가 컸다. 희생자 대부분은 가족과 떨어진 채 건설현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서민들이었다.

화재 발생 및 진화

불이 난 곳은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용인타워빌딩(지하 3층, 지상 10층) 9층의 타워고시텔.

화재 발생 시각은 25일 오전 1시 25분경으로 투숙객 대부분이 잠을 자고 있었다. 불이 나자 고시원 관리인 고모(46) 씨가 소방서에 신고했고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오전 2시 5분경 진화됐다.

그러나 고시원에서 잠을 자던 이영석(37) 씨 등 7명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이철균(45) 씨 등 6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씨 등 2명은 중태다. 상처가 가벼운 나머지 5명은 치료를 받고 귀가했다.

불은 비어 있던 고시원 6호실에서 난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자가 없는 다른 8호실의 침대 일부도 불에 탔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은 방화와 실화 가능성 모두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라며 건물 1층과 승강기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자료를 확보해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 오열

숨진 이영석 씨의 어머니 김모(63) 씨는 10년 만에 찾은 아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자 넋을 잃었다.

이 씨는 10년 전 집을 나간 뒤 가족들과 연락이 끊어졌다. 김 씨는 지난주 집으로 온 교통법규 위반 벌금 고지서를 보고 아들이 용인에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날 오전 서울 집에서 용인으로 출발하려다 뉴스를 보고 아들의 이름을 발견했다.

김 씨는 헤어진 지 오래돼 형제들은 얼굴을 못 알아 봤는데 귀 밑의 상처와 점을 보니까 영석이가 맞더라며 오열했다.

사망자 이철수(44) 씨는 부상자 이철균(42) 씨와 친형제 사이다. 중국 동포인 이들 형제는 2월경 방문취업차 입국해 함께 고시원에 머물며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이들 형제는 불이 나자 손을 잡은 채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러나 연기 속을 헤매다 잡았던 손을 놓쳤고 결국 생사의 운명이 엇갈렸다.

동생 철균 씨는 병실로 옮겨진 뒤 의식을 차리고 나서야 형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했다. 그는 중국에 있는 형수와 가족들에게 아직 연락을 하지 못했다며 이 참사를 어떻게 전하란 말이냐며 눈물을 흘렸다.

2개월 전부터 성남시 판교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이병철(38) 씨는 불과 1주일 전 고시원 방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 씨는 출입구에서 2, 3m 떨어진 방에 머물다 창문이 있는 방으로 가겠다며 고시원 안쪽 26호실로 옮겼다. 가족들은 이 씨가 방을 바꾸지 않았으면 살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오전 치료를 받다 숨진 권순환(26) 씨는 2녀 1남 중 막내. 응급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어머니(58)는 간호사가 검게 그을린 아들의 옷가지를 갖다 주자 그제야 실감한 듯 안돼, 안돼라며 끝내 오열했다.

권 씨의 둘째 매형 표모(36) 씨는 막내지만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책임지겠다며 고민을 많이 했던 처남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찬영(26) 씨는 2006년 말 군복무를 마친 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용인의 한 물류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머니 임모(50) 씨가 등록금을 내줄 테니 가을에 복학하라고 했지만 정 씨는 졸업 때까지 등록금을 벌어놓겠다며 계속 일하다가 화를 당했다.

용인=



이성호 신광영 starsky@donga.com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