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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영화 열한 번째 엄마 손들고 나선 김 혜 수

저예산 영화 열한 번째 엄마 손들고 나선 김 혜 수

Posted November. 20, 200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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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전 한 푼 없는 데다 몸뚱이도 아프고 천지간에 혼자인, 그래서 세상에서 자신을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자기보다 더 불쌍해 보이는 소년을 만났다.

엄마가 죽은 뒤 여자를 수시로 바꿔 들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에게, 이 여자는 열한 번째 엄마다. 서로 상대방이 더 불쌍하다고 주장하던 두 명이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열한 번째 엄마(29일 개봉). 엄마는 배우 김혜수다.

타짜를 촬영하던 중 자신에게 들어오지도 않은 시나리오를 우연히 보게 됐다. 당시 김진성 감독은 5억 원 미만의 초저예산 영화를 구상하고 있었지만 구체적 제작 계획도 없었다. 김혜수가 먼저 나는 어떻겠느냐고 정중히 요청했다. 제작이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뜻밖에 그가 캐스팅되면서 류승룡 황정민이 동참했고 아역에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의 사촌동생 역할로 얼굴을 알린 김영찬이 캐스팅됐다. 투자도 예상보다 많이 받게 됐다. 여전히 18억 원의 저예산 영화. 그러나 희망적인, 그리고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시작이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대작에만 출연하지 않아요. 우리한테 그런 것만 보이는 거지. 니콜 키드먼이나 케빈 스페이시 같은 대스타도 인디 영화에 나와요.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물론 돈이 적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주 적은 돈은 아니고, 또 좋은 경험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나요. 그리고 제가 워낙 좋은 작품에 목이 말라요.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이제 없다. 배우로서 영역을 더 넓히려면 그런 시기가 필요함을 알았고 그런 기회도 주어졌단다. 좋지 아니한가에선 머리 벅벅 긁으며 하품 찍찍 하던 백수 노처녀로 나오더니 이번엔 누렇게 뜬 얼굴에 병색이 완연하고 생활보호대상자인 아이의 식권까지 뺏어 먹을 것을 사며 툭하면 욕을 내뱉는 험한 여자다.

제가 꾸미면 화려해지는데 다 지우고 집에 있으면 안 그래요. 밖에 나가서 말 안 하면 몰라요. 일을 하도 오래 해서 목소리는 들으면 다들 아시죠.

그는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정색을 하고 이 말이 진짜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가 맡은 역할 중 가장 밑바닥 인생이다. 모두에게 버림받고 나서 자신의 삶을 그냥 막 내버려 둔 여자. 자신이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랐는지 잘 알고 있는 김혜수는 우리 모두 힘든 순간이 있지만 얼마나 이기적으로 자신이 힘든 것만 인정받고 싶어 하며 살아가는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역할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엔 좀 특별하다. 김혜수는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서 느끼는 모성애라기보다는 소외되고 결핍된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가까워지는가를 염두에 두고 연기했다. 항상 버림받고 좌절만 한 이들은 누군가가 애정을 보여 주면 더 공격적으로 변해요. 절실하게 사랑받고 싶지만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다시 받을 상처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도 있고. 그래서 영화 속 두 사람은 상대방이 관심을 보이면 처음엔 냉랭하게 그것을 거부한다.

지금 파릇파릇한 여배우들이 걸음마를 할 때부터 연기를 해 온 이 22년차인 서른일곱의 여배우는 스크린에서 그가 보여 주는 강력한 포스와는 달리, 편안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내가 너무 오래 해서 그런지라고 반복했다. 그는 그렇게 오래 관객 곁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억압했었다는 20대를 지나 30대 후반으로 가는 지금, 아주 편안하다. 2년 동안 다섯 편의 영화를 찍을 만큼 바쁘게 살면서도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제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참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뭐든지 정말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돼요.



채지영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