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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로 설화로 현대 중국작가 2인의 시대 꼬집기

풍자로 설화로 현대 중국작가 2인의 시대 꼬집기

Posted August. 27, 200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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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진 지음•김연수 옮김•480쪽•1만2000원•시공사

매년 여름 쿵린은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 어춘에 있는 집으로 갔다.

기다림은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서정적이지만 충격적인.

기다림은 중국 작가 하진(51•사진)을 단숨에 미국 문단의 스타로 떠오르게 한 작품. 하진은 29세에 도미해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기다림으로 펜포크너상과 전미도서상 등 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의 배경은 중국의 문화대혁명기이지만 혁명의 상처는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야기는 우유부단한 유부남과 보수적인 아내, 유부남의 애인이 엮어 가는 18년 동안의 사연이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수위와 결혼한 군의관 쿵린. 자신과 부모님께 헌신적인 아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아내가 촌스러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긴 민망하다.

그런 그가 세련된 간호사 만나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해마다 쿵린은 이혼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 아내를 만나지만 수위는 늘 막판에 마음을 바꾼다. 쿵린은 이제 별거한 지 17년이 되면 아내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있다는 법에 기대야 한다. 만나의 미모는 바래고 다른 사내에게 성폭행까지 당하지만 쿵린과 만나는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결혼한다.

그들은 행복했을까? 이 이야기의 끝에는 슬픈 반전이 있다. 담담하고 쓸쓸한 문체로 인해 기다림은 안타까운 러브스토리 같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전통을 수위로, 현대사회를 만나로 의인화하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쿵린에 투영한다. 혁명의 잔혹한 폭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이 소설은 놀랍다. 독자 대부분이 공감할, 사랑으로 인해 가슴을 찢어 놓는 상처의 깊이가 바로 혁명의 상처의 깊이라는 것을 하진은 조용히 일러 준다.

눈물(전 2권) 쑤퉁 지음•김은신 옮김•336쪽(1권), 288쪽(2권)•각권 9500원•문학동네

맹강녀 이야기는 중국의 4대 민간설화 중 하나다. 진시황의 장성 공사에 징발된 남편을 찾아 나선 맹강녀는 고생 끝에 성에 이르렀지만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성 아래서 매일 눈물을 흘리는 맹강녀. 열흘 만에 성이 무너지면서 남편의 유골이 발견됐다.

나, 제왕의 생애 쌀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중국 작가 쑤퉁(44•사진)이 이 설화에 상상력을 덧입혔다. 눈물의 주인공은 머리카락으로 눈물을 흘리는 여자 비누다. 진나라 말, 황제의 숙부의 억울한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뒤 마을에서 눈물은 금지돼 있다. 마을 여인들은 그래서 신체의 다른 부위로 몰래 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머리카락으로 우느라 비누는 늘 머리가 젖어 있어 쉰내가 나고 빗질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비누는 가난하지만 성실한 완치량과 결혼해 행복한 날들을 보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만리장성 공사장에 끌려간다. 남편을 위해 겨울옷을 지은 비누는 천 리 길을 마다 않고 남편을 찾아가기로 한다.

쑤퉁의 상상력은 놀랍다. 비누가 가는 온갖 고초의 길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풍자다. 사람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인간 시장, 아이들이 사냥감으로 쓰이는 사냥터. 비누는 눈물탕약을 만드는 관리에게 붙잡혀 억지로 눈물을 흘려야 하고, 악한 아이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팔려가기도 한다.

두툼한 책인데도 빠르게 읽힌다. 중국 소설 특유의 서사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메시지도 묵직하다. 쑤퉁은 소외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력도 재산도 아무것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눈물이 얼마나 순수하고 숭고한 것인지를 쑤퉁은 대단히 극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를 통해 알려준다.



김지영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