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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다시 그라운드를 날고 싶다

Posted June. 23, 200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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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강하다니까

지난해 12월 대장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박철순은 약간 살이 빠져 보였지만 표정은 아주 밝았다. 입 초리가 살짝 올라가는 특유의 살인 미소도 그대로였다. 이마가 좀 더 넓어지고 주름이 약간 늘었을 뿐. 앞머리가 빠진 것은 선수 시절 허리디스크 치료를 받으며 탈모 증세가 생긴 탓이다.

작은 종양을 뗀 것뿐인데 일부 언론에서 확인도 하지 않고 박철순, 대장암 투병 중이라고 보도해 섭섭했다. 그것 때문에 성사 직전이던 CF 계약도 취소됐다.(웃음)

박철순은 수술 후 3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고 있다. 3월 검진에선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요즘은 술과 담배도 조금씩 한다. 욕구를 억제할 때 받는 스트레스가 건강에는 더 나쁘다면서.

아픈 건 진저리나도록 경험했다. 야구선수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허리디스크와 아킬레스힘줄 수술을 몇 번씩 하고도 다시 일어섰는데 그깟 작은 종양에 내가 쓰러지겠나.

야구계 컴백? 기회가 되면

박철순은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의 Forever 21 행사에 참석하면서 가슴 한쪽에 꼭꼭 숨겨둔 채 애써 잊으려 했던 야구에 대한 열정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선수 시절 내 공을 받아주는 전담 포수였던 김경문 두산 감독을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순간 내가 두산 유니폼을 입고 옛 동료들과 함께 더그아웃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박철순은 1997년 15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을 접고 은퇴했다. 이후 플레잉코치로 1년을 보낸 뒤 OB(옛 두산)를 떠났다. 현장 복귀의 꿈은 완전히 접었을까.

지도자의 그릇은 따로 있다. 난 선수 그릇밖에 안 된다. 성격이 급해 지도자로서는 빵점이다. 좋은 지도자는 선수가 잘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게 필요한데 나는 덕이 부족하다.

박철순은 그동안 몇몇 구단으로부터 지도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단다. 하지만 만약 지금 친정팀 두산에서 제의가 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오프 더 레코드(보도를 안 한다는 전제 하에 대답)라는 전제 로 답변이 돌아왔다.

아주 많이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어쩌면 OK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김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서 말이다.

사업가 박철순? 아직 배울 게 많다

박철순은 경기 군포시의 LCD 제조업체 모든테크의 회장이다. 후배의 권유로 사업에 뛰어들었고 어느새 회사는 종업원 150명에 연간 매출 300억 원에 이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사람 만나 비즈니스하는 게 아직도 서툴다. 아직도 사업가로 배울 게 많다고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사업 철학은 갖고 있다. 그는 최고경영자지만 여전히 검소하고 소탈하다. 쓸데없이 돈을 쓰지 않으려고 법인카드를 갖고 다니지 않는다. 허리 때문에 장기간 운전은 어렵지만 대부분 직접 한다. 이런 그에 대해선 이제 업계에서도 제법 소문이 났단다.

등번호 21번은 마음의 고향

박철순은 부산 동광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부가 생기면서 우연히 야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게 삶의 전부가 됐다. OB에서 활동할 때 등번호 21번은 두산에서 2002년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1979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해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의 번호다.

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국내에 돌아와 24승 4패 7세이브에 평균자책 1.84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세계신기록인 단일 시즌 22연승 기록도 세웠다. 7번의 부상을 이겨내고 1997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성적은 76승 53패 20세이브에 평균자책 2.95.

야구선수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1983년 허리디스크가 완쾌되지 않은 상황에서 MBC(현 LG)와의 경기에 출전했다. MBC 송영운의 타구에 허리를 맞고 쓰러지면서 이제 인생 끝났구나 싶더라.

혼자 사는 것도 즐거워

박철순은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외롭지 않으냐고 했더니 혼자 있는 걸 즐긴다. 두 아들이 회사에 함께 다닌다며 웃었다.

박철순은 은퇴 후 야구 선후배들과는 일부러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야구장은 내 마음의 고향이고 후배들 손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오해를 사기 싫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져서 여기 왔나 하는 말이 나올까봐.

가끔 TV에서 두산이 경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박철순. 그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언제나 친정팀을 응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마운드를 떠났어도 마음은 여전히 마운드에 서 있는 듯했다.



황태훈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