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어제 노무현 대통령의 원광대 강연 및 6월 항쟁 20주년 기념사를 문제 삼아 대통령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다시 고발했다. 김성호 법무장관은 그제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노 대통령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공직선거법의 공무원 선거중립의무 조항에 대해 위헌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선관위는 어정쩡한 자세다.
선관위는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 평가포럼 발언(2일)에 대해서는 선거법 위반이라고 7일 결정했다. 선관위법 14조 2항에 따르면 선거법 위반행위에 대한 선관위의 중지경고시정명령을 불이행할 경우 관할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 또는 고발할 수 있다. 선관위의 1차 경고를 무시한 대통령을 선관위가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노 대통령은 선거법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까지 했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위원 전체회의를 열 계획조차 없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8일 원광대에서 모호한 대통령의 선거중립 규정은 위헌이라면서 우리의 선거제도를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 제도라고 비하했다. 6월 항쟁 기념사에서는 헌법의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선거법의 정치적 중립의무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현행 제도는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명이고, 쪽 팔린다고 극언했다. 헌법 수호자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치졸하고 자학적인 법의식을 보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도 선거개입 발언을 자제할 것 같지가 않다. 청와대부터 대통령이 정치적, 정책적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고, 발언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모종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도발적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심마저 든다. 힘 있는 기관들이 선관위 결정을 자발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선회 전 헌재 재판관의 본보 인터뷰 발언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먼 산의 불 보듯 하니 이래서야 불과 6개월 앞으로 다가선 대선을 엄정하게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현철 위원장이 이끄는 선관위가 정치권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면 대선이 공정하게 관리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