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중구 동인동 2가에 가면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 만든 것으로 면적이 1만2800여 평에 이른다. 구한 말 이곳에서 점화된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살려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는 뜻에서 조성됐다. 경내 오솔길엔 22.5t의 달구벌 대종()을 비롯해 이육사 박목월 조지훈 이호우 윤동주 등 향토 시인들의 시비()와 이언적 김굉필 서거정 이황 정몽주 이상화의 명언비()도 늘어서 있다.
국채보상운동이 21일로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는 당시 우리 경제를 침탈하기 위해 자기 나라 차관()을 도입케 했다. 이에 따라 고종 황실은 도쿄에서 200만 원의 공채()를 발행해야 했고, 이렇게 해서 생긴 외채가 1907년엔 총 1,300만 원에 달했다. 황실의 빈약한 재정 상태로는 상환이 불가능했다. 국민이 이를 대신 갚아 국권()을 지키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출판사인 광문사의 설립자 서상돈, 사장 김광제 선생이 제안한 민간 차원의 경제독립운동이었던 셈이다.
모금을 총괄하는 지원금수합()사무소가 설치됐고,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신문들은 후원 캠페인을 벌였다. 지금 우리의 국채 1300만 원은 대한의 존망이 달린 일이라 할지니 2000만 동포가 석 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만 모은다면(대한매일신보). 두 달 여 만에 4만여 명이 동참했다. 서울 평양 진주 등 전국 각지의 기생들도 아끼던 금가락지 은가락지를 내놓았다.
대구에선 요즘 100년 전의 정신을 되살려 나라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신()국채보상운동이 한창이다. 서김 선생 흉상 제막, 우표 발행, 음악회, 전시회, 기념 오페라 불의 혼 공연 등이 일주일간 이어진다. 우리는 불과 10년 전 금 모으기 운동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뒤집어 보면 정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이 운동의 정신은 살려나가야겠지만 정부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