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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혼을 먹고사는 '바람의 파이터'

Posted September. 23, 2006 03:55,   

투혼을 먹고사는 \

체육관 벽에 투혼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프로복싱 세계복싱협회(WBA) 슈퍼페더급 챔피언 출신으로 이종격투기 K-1 데뷔전을 치른 최용수(34). 그는 챔피언 타이틀을 잃은 뒤 8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링 주위를 맴돌아야 했다. 아마 투혼은 이런 자신에 대한 채찍이었을 것이다.

말수 적은 그의 취미는 낚시. 스타일은 끈기의 파이터형. 침묵 속에 때를 기다리는 승부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링 위에 돌아오기까지가 쉽지만은 않았다.

98년 WBA 챔프 타이틀 잃고 8년 만에 링 복귀

그는 1998년 8차 방어에 실패한 뒤 5년 만인 2003년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페더급 챔피언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이어지는 생활고. 그는 링 밖에서 인조석을 납품하는 트럭을 몰기도 했고, 버스 운전사 모집에 응모하기도 했다. 이력서에 세계 챔피언이라는 경력을 썼더니 사람들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큰 버스보다 마을버스부터 몰아 보라는 권유도 받았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다시 준비한 그는 이종격투기 선수로 변신해 16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스웨덴의 무아이타이 챔피언 드리톤 라마(23)를 1회 KO로 물리치고 화려하게 링에 복귀했다.

30대 중반의 격투기 선수. 그러나 이제 출발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칸 짐 체육관에서 몸을 풀고 있던 그는 운동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 건성건성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출신 박용수(25) 등과 함께 이종격투기 훈련을 하고 있는 그는 아직 발차기 등에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다고 말했다.

복싱도 자세를 잡는 데만 1년이 걸리는데 이종격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발차기는 방어 기술 위주로 훈련했습니다. 상대에게 발차기 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빠르게 바싹 붙어서 복싱 기술로 경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는 전성기의 체력이나 기량을 100으로 본다면 지금은 30 정도 되는 상태라고 했다.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날 그는 어머니 생각이 나서 링 위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운동하는 것 자체가 불효였다. 그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려 했다며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 그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체력-기량 예전의 30% 새로 가는길 후회 안해

지난해 이종격투기 진출 제안을 받은 그는 이제 가드도 안 올라간다며 체력과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고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을 바꿨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까지 가서 전문가에게 집중적으로 이종격투기 트레이닝을 받고 왔다.

비슷한 듯하지만 복싱과 K-1은 아주 다른 길이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글러브를 끼었다. 그는 서로 치고받고 하는 것은 똑같지 않으냐며 투지를 보이다가도 K-1 선수들의 복싱 기술이 좋아 아무리 챔피언 출신이라도 마음 놓을 수 없다며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이원홍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