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는 죄사상(crimethink)이라는 신어()가 나온다. 자유와 평등 개념에 속하는 모든 말이 한마디로 죄사상이다. 이렇게 말을 바꿈으로써 생각까지 바꿔 버리려는 것이다. 소설 속의 진리성()은 과거의 진리를 밝히는 게 아니라 정부의 선전에 맞춰 과거를 바꾸는 일을 한다.
역사와 언어를 왜곡해 현실을 조작하는 것은 지배 세력의 전매특허인지 모른다. 미국 좌파잡지 더 네이션은 20여 년간 득세해 온 우파의 언어를 다룬 공화주의자의 사전을 펴냈다. 민주주의=외국으로 너무 많이 수출해서 국내 공급이 바닥난 물질 신(God)=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최고 고문 게으름=가난한 사람들이 일을 안 하는 것 레저=돈 많은 사람들이 일을 안 하는 것이라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의미가 바뀌어 온 단어로 보수와 진보를 빼놓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2년 전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는 것이고 진보는 더불어 살자는 것이라고 사전에 없는 뜻풀이를 내놓았다. 한국에서 진보는 좌파고 빨갱이다 하고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진보를 막는 암적 존재라고도 했다. 올해 초 자신이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밝힌 것도 이런 자락을 깔고 난 뒤였다. 그런데 어제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김근태 최고위원의 의장 승계를 놓고 좌파라서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청와대는 괜찮고?
정치적 역사적 의미를 빼고 국립국어원이 정리한 사전적 의미만 보면 진보는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좌파이자 자칭 진보적이라는 현 정권 출범 이후 나라의 정도나 수준이 나아졌나. 노 정권이 개혁() 입법이라고 우기는 신문법, 사립학교법, 과거사법도 헌법정신을 흔들고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개악()이라고 해야 맞다. 우리도 참여정부의 사전을 내야 할 것 같다. 단 여기서 참여는 그들끼리의 코드를 뜻한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