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8시 전남 순천시 별량면 화포마을.
바닷가 마을에 어둠이 찾아들자 할머니들이 하나 둘 마을회관 한글 교실로 들어섰다. 허리춤에 한글책과 공책, 필통이 보였다.
20평 남짓한 공부방 한쪽 벽에 가 갸 거 겨 고 교 구 규가 표기된 큼지막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돌하르방, 물개쇼, 전복죽.
수업에 들어가기 전 강사 윤해경(45여) 씨가 지난주 배운 단어를 써보라고 하자 한 할머니가 돌자를 쓰지 못해 머리를 긁적였다. 윤 씨가 도자 밑에 받침을 하면 되잖아요라고 귀띔해 주자 할머니는 수줍게 웃었다.
순천시 문맹률은 7.7%. 2010년까지 문맹률 0%를 실현하기 위해 2004년부터 지금까지 139개 마을에 배움터를 열었다. 지금까지 수강생이 2200여 명에 이른다.
조곡동 주민자치센터 2층 영어 교실. 20, 30대 주부 10여 명이 원어민 영어강사 마리 브랜킨(26여) 씨 주위에 둘러앉아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Whats your favorite color? 브랜킨 씨가 좋아하는 색깔을 묻자 수강생이 돌아가며 영어로 대답했다.
유경화(27주부) 씨는 매주 두 차례 1시간씩 영어회화를 배우는데 강의료를 받지 않아 아무 부담 없이 나온다며 초급반 강의가 끝나면 6월부터 중급반 수업을 들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24개 주민자치센터에 근무하는 영어 원어민 강사는 11명. 이들은 자치센터를 돌아다니며 영어를 가르친다. 지난해 시민 2700여 명이 강의를 들었다.
순천시 관내 초중고교는 모두 60개. 실업계 4개 고교를 제외한 8만5000여 명이 원어민 영어강사의 수업을 받는다. 시민 27만 명 중 35%가 무료로 영어 교육을 받는 셈.
시내에서 20여 km 떨어진 낙안면 동내리 낙안읍성 민속마을.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이 마을은 성곽 안에 조선시대 관아와 100여 채 초가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마을로 들어서자 관리사무소 맞은편에 초가집 도서관이 보였다. 순천시가 지난해 5월 4000만 원을 들여 초가를 도서관으로 꾸몄다.
어린이, 청소년, 어른방 등 3곳에 진열된 책은 2200여 권. 동화책, 소설책, 최신 잡지, 참살이(웰빙) 관련 서적 등 다양한 책을 갖다 놓았다.
자원봉사자 봉미연(40여) 씨는 책만 읽는 도서관이 아니라 주민의 사랑방이자 아이들이 도예나 판소리를 배우는 체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관광객이 마을 명물인 도서관을 보고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순천시는 2004년 마을회관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실을 리모델링해 동네형 도서관 12곳을 개관했다. 지난해 7곳을 만들었고 올해는 5곳이 더 생긴다.
순천은 주민 1만 명당 도서관이 1개꼴로 있어 도서관 천국으로 불린다. 2003년 문화방송(MBC)과 책 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이 주관한 기적의 도서관 유치활동이 계기였다.
허순영(53) 기적의 도서관장은 도서관에서 하룻밤 보내기, 인형극 공연, 시 낭송회 등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난해 전국에서 300개 단체 1만3000여 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순천시는 지난해 12월 국내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교육도시연합(IAEC)에 가입했다. 2003년부터 시민 맞춤형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매년 전체 예산(4200억 원)의 1% 이상을 평생학습 관련 사업에 투입한 결과다.
양동의() 순천시 평생학습지원과장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 단계별로 시민이 원하는 학습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세계적인 평생학습 도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