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최고경영자 중에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다. 미국 1000대 기업 최고경영자 가운데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갖고 있는 사람은 3분의 1 정도다. 포천지()는 미국 최고경영자의 76%가 대학 시절 인문학 전공자라는 통계를 내놓았다. 한국 기업에도 인문계 출신 임원 수가 늘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기업체 임원 가운데 8%에 머물렀던 인문계열 출신이 지난해 12.2%로 증가했다.
서양에서 인문학은 휴머니티(Humanity)로 불린다.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소비자의 기호와 심리 파악이 기업 성공의 열쇠로 떠오르면서 인문학적 소양이 깊은 경영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흔히 역사의 전환기에 인문학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한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갈 때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고 있으면 디지털의 신()시대가 어떻게 전개될지 내다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시류에 따라 인문학을 푸대접하거나 치켜세웠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이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본 것은 문학 역사 철학, 즉 문사철()을 전공 필수로 하고 시 서예 그림, 즉 시서화()를 교양 필수로 갖춘 사람이었다. 문사철은 이성을 닦는 훈련이고 시서화는 감성을 위한 훈련이라는 점에서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인격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최고의 인재상이다. 문사철이 바로 인문학 아닌가.
줄기세포 사기극이나 정치권의 저급하고 치졸한 막말 정치 거짓말 정치도 인간의 근본, 배움의 기본에 소홀했던 데 따른 부메랑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가 인문학 전공 박사과정 학생 300명을 인문학 장학생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인문학이 위기의 단계를 넘어 공백으로 치닫는 마당이라 때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 인문학을 위한 한 줄기 빛이 됐으면 한다. 각계가 지금부터라도 벽돌 한 장씩 쌓는 자세로 인문학 복원에 나섰으면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