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따뜻한 철학 만나 보시죠

Posted December. 20, 2005 08:23,   

ENGLISH

올해 크리스마스는 레비나스의 10주기입니다. 인간의 존재 기반이 내가 아닌 타자에 있음을 평생 설파해온 그의 기일이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했듯이 타인을 위한 존재로 이 땅에 온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19051995)의 철학 세계를 안내한 타인의 얼굴(문학과지성사)을 펴낸 강영안(53철학) 서강대 교수에게 레비나스는 철학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람이다.

강 교수는 원래 한국외국어대에서 네덜란드어를 전공한 어학도였다. 그는 영어, 프랑스어, 독어, 네덜란드어뿐 아니라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 11개 언어를 구사할 만큼 어학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1974년 당시 네덜란드어과 교수였던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이 국내 최초로 레비나스의 철학을 소개한 글을 읽고 철학에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레비나스는 서양철학이 진리와 주체를 강조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주체의 인식대상으로 환원시켰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대신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것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이방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환대(hospitality)의 정신에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강 교수는 손 총장의 추천으로 벨기에 루뱅대로 유학을 떠났고 레비나스 철학에 입문하기 위해 꼭 거쳐야할 칸트 철학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 칸트는 순수이성(진리)보다 실천이성(윤리)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윤리학을 제1철학으로 선언한 레비나스의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레비나스의 부모와 형제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로코스트로 희생됐습니다. 프랑스군 통역장교였던 그는 포로가 되는 바람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독일군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을 당시 고된 사역을 끝내고 돌아올 때 반갑게 짖어주던 독일군견만이 나치독일의 마지막 칸트주의자였다고 훗날 회상했습니다.

칸트가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발표하면서 뒤늦게 철학계의 스타가 됐듯이 레비나스는 56세 때 전체성과 무한으로 프랑스 국가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레비나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심화시켰다. 칸트는 우리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먼저 그 행위가 우리 자유의사에 따른 것인가를 봐야한다는 점에서 자유가 책임에 선행한다고 했다. 반면 레비나스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책임을 우리의 자유보다 앞세울 때 비로소 자유가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책임이 자유에 선행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에서 같은 포스트모던 철학자이면서 주체의 죽음을 강조하며 폭로의 철학과 전복의 철학을 펼친 푸코, 들뢰즈, 데리다와 차별성을 보인다.

레비나스의 철학은 연인과 부모자식의 관계라는 우리 일상의 관계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레비나스는 남성에게 여성이 매력적 존재로 다가서는 이유는 나(남성)로 인해 상처받을 가능성과 이해불가능성이라는 타자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식은 타자가 된 나라는 점에서 우리의 유한성을 극복하게 해준다고 설파했다.

레비나스는 우리의 주체가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텅 빈 것이 아니라 이웃, 타자, 고통받는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풍성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정의가 진리에 우선한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크리스마스의 정신이 아니겠습니까.



권재현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