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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산에서 살고 지고

Posted November. 04, 2005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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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면 마음이 편안한데 내려오면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지. 히말라야로 훌쩍 떠나고 싶어요.

한국 여성 대표 산악인 오은선(39영원무역수원대 산악부 OB) 씨. 그는 만나자마자 다시 산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 씨는 지난해 12월 20일 남극대륙 최고봉 빈슨매시프(해발 4897m) 정상에 서 한국 여성 최초의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자가 됐다. 허영호(1995년) 박영석(2002년) 씨에 이어 국내 산악인 중 3번째이며 여성 산악인으론 세계에서 13번째.

27세에 처음 본 에베레스트 못잊어

대학 신입생이던 1985년 가을, 오 씨는 산악부에 들어갔지만 직업군인이던 엄한 아버지가 좀처럼 외박을 허락하지 않아 주로 근거리 산행만 다녔다. 대학 졸업 후 서울시교육위원회 전산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그는 1993년 대한산악연맹이 꾸린 여성 에베레스트원정대에 응모했다. 당당히 14명의 대원에 뽑히자 그는 망설임 없이 사표를 던지고 에베레스트로 떠났다. 당시 지현옥(1999년 안나푸르나 등정 후 실종) 씨 등 3명이 정상을 밟았지만 막내격인 그는 정상정복조에 발탁되지도 못해 정상을 밟아볼 기회조차 없었다.

학습지 교사 생활스파게티집 열기도

1993년 처음 본 에베레스트가 그의 인생을 확 바꿔놓았다. 귀국 후 좀 더 자유롭게 산을 타기 위해 출퇴근 시간이 엄격한 직장생활 대신 학습지 방문교사를 택했다. 1999년엔 수원에 스파게티 전문점을 열어 1년 3개월 동안 직접 주방을 맡기도 했다. 내가 직접 벌어서 원정에 나서려고 했는데 큰돈은 모이지 않더군요라며 웃었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첫 대면한 지 11년 만인 지난해 5월 20일,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 최고봉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함께 간 절친한 후배 박무택(계명대 산악부 OB) 씨 등 3명의 동료를 잃는 슬픔을 겪었고 하산 길에 산소가 부족해 혼절 직전까지 가는 등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딱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산악인으로서 평생 소원을 풀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2004년 5개 대륙 최고봉 정상에 서다

1997년 7월 가셔브롬2봉(8035m) 정상에 올라 첫 8000m급 고봉정상을 경험한 그는 이후 박영석(42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 OB) 씨가 이끄는 원정대의 홍일점으로 브로드피크(8047m1999년) 마칼루(8463m2000년) K2(8611m2001년) 원정에 나섰다.

오 씨의 등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3년 5월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한국 여성 산악인 사상 최초로 단독 등정하면서부터. 그는 2004년 한 해 동안 에베레스트 등 5개 대륙 최고봉을 연거푸 오르며 초스피드로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기록을 세웠다.

남자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다

그는 아직 미혼. 산과 결혼한 셈이냐?는 짓궂은 질문엔 남자를 싫어하지 않는데 만날 시간이 없네요란다. 오 씨의 최근 소망은 여성대원들만으로 K2에 도전해 보는 것. 이건 경비 문제뿐만 아니라 높은 등반기술과 정신력이 필요해 여러 후배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 창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