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일본 지방문화재 지정 움직임

Posted August. 16, 2005 03:09,   

ENGLISH

이 절의 주지격인 이치조 후미아키(조) 노사()는 조선통신사 관련 시문첩()을 사찰 보물고에서 꺼내와 보여 주었다.

이건 고구마를 조선에 처음 전한 사람으로 유명한 조엄(2)이 남긴 글입니다.

동행한 김양기() 도코하가쿠인()대 객원교수가 잘 보존된 시문첩을 넘기며 감탄했다. 조엄(17111777)은 1764년 파견된 제11차 통신사 472명의 대표인 정사(). 그는 사절단을 이끌고 에도(: 현재의 도쿄)로 가던 길에 세이켄사에 들렀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조선통신사 유묵 등 70여 점이 보존돼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9년 뒤인 1607년 세이켄사에 머문 1차 조선통신사 대표단이 이곳 절경을 두고두고 이야기했고 이 영향으로 이후 200여 년간 12차례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찾을 때마다 이 절은 단골 코스가 됐다.

당시 이 절의 말사 격이었으나 현재는 별도의 하쿠인()파 본산이 된 인근 사찰 쇼인()사에도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일본 선종을 중흥한 학승이자 달마도의 화가로 유명한 하쿠인(18651768) 선사가 남긴 그림 마상재()는 바로 조선통신사가 대동한 마상곡예사를 보고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인근 하라()에서 수백 년간 대를 이어온 다카시마()양조회사가 한정품으로 팔고 있는 일본 전통 술의 상표로 사용되고 있다.

이 회사 다카시마 야스히데() 사장은 한중일 삼국은 4000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은 아버지, 한국은 형, 일본은 동생 같은 한 가족이라면서 조선통신사는 당시 양국 외교를 넘어서 진정한 동아시아 혼()의 교류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치조 노사 또한 조선통신사가 남긴 보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졌던 조선통신사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일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시즈오카 현과 시를 상대로 문화재 지정 교섭에 들어간 김 교수의 말이다.



조헌주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