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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불안한 동거 아! 옛날이여

Posted July. 08, 2005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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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에서 마케도니아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5일 오후 늦게 국제이주기구(IOM)의 초청장을 가지고 국경에 도착했지만 국경수비대는 IOM이 직접 서류를 보내야 한다며 입국을 막았다.

결국 코소보의 프리슈티나에서 남쪽으로 1시간 반 넘게 자동차로 달려간 길을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다시 하루를 묵은 뒤 6일 오후에야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수도 스코페는 평화스러운 유럽의 여느 작은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난과 혼란에 찌든 알바니아나 아직도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감도는 코소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하지만 마케도니아는 발칸지역 내에서도 인신매매와 조직범죄로 악명 높은 나라. 암살은 슬라브계 마케도니아인의 특기로 여겨질 정도다. 독립 이후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국가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인구의 65% 정도인 슬라브계와 알바니아계 세르비아계 등 여러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마케도니아는 유고연방 붕괴 후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이른바 네 마리 늑대의 먹잇감처럼 취급됐다.

특히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민족은 슬라브계 공산주의자들의 발명품일 뿐 슬라브인들이 그리스인 알렉산더 대왕의 왕국명을 사용할 수 없다며 마케도니아를 옥죄기 시작했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독립 직후 국경 봉쇄조치를 취했고 유럽국가의 원조금까지 막았다. 그리스인들은 지금도 마케도니아를 그저 스코페라고 부른다.

199899년 코소보 분쟁은 마케도니아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알바니아계 코소보인 60여만 명이 일시에 국경을 넘어오면서 마케도니아 서부 지역은 난민촌이 되어 버렸고,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 주둔 이후 스코페는 코소보 주재 외국인들의 섹스 관광지로 전락했다.

2001년 인구의 20%가 훨씬 넘는 알바니아계 반군세력의 봉기로 내전 일보 직전의 위기를 맞은 뒤엔 어딜 가나 무기와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취약 국가가 돼 버렸다.

알바니아계 반란 이후 마케도니아 정부는 EU가 제시한 중재 조건에 따라 총리는 슬라브계, 부총리는 알바니아계가 맡고 장차관도 양측이 나눠 맡는 기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마케도니아의 갈 길은 험난하다. 뿌리 깊은 부패가 특히 문제다. 프로 미디어라는 언론단체를 이끄는 클리메 바분스키 씨는 국경을 넘나드는 인신매매나 마약무기밀매에는 범죄조직이 개입돼 있기 마련이고 그 뒤엔 경찰과 정치인 등 권력층이 비호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마케도니아의 다민족 동거 실험은 비록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의 진전 여부에 따라 같은 문제를 지닌 주변 국가에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미국은 전 세계에선 최초로 FYROM이 아닌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인정했다. 민주주의를 약속한 마케도니아에 대한 보상 조치라는 얘기가 많았다.



이철희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