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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Posted June. 04, 2005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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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금의 왕자들을 미모와 용기로 차지한 주인공들이기 때문일까. 머리 색깔도 눈 빛깔도 달랐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또한 지혜로웠다. 긴 세월 동안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놀랍도록 비슷한 내용으로 전해져 온 다양한 신데렐라 계열 설화의 주인공들. 신간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에 소개된 그들을 상상의 공간에서 만났다.

다른 얼굴, 같은 인생역정

오랜 시간에 걸쳐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여러분을 만나 기쁩니다. 각각 다른 시대와 나라에 등장했지만 서로 깜짝 놀랄 정도로 닮은 인생을 사셨다고 들었는데요.

상드리용(프랑스)=저희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시달림을 받았지요.(웃음)

콩쥐(한국)=그것뿐만이 아니에요. 계모가 골탕 먹이려 내준 어려운 심부름을 동물, 특히 소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것도 닮았고, 잔치에 가서 신발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멋진 분과 결혼하게 되는 점도 우리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그렇게들 닮았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중 최고 연장자는 누구십니까.

섭한(중국)=접니다. 당나라 때인 서기 860년경 발간된 수필집에 제 이야기가 처음 실렸으니 일천 살이 훨씬 넘었지요. 잔치에 갔다가 황금 신발을 잃어버렸어요. 그 앞뒤 사정이야 다들 비슷하고.

고대종교에서 가족 로망스로 변신

베트남, 아르메니아, 필리핀. 비슷한 이야기가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지역에서 입에 오르게 된 걸까요.

할록(베트남)=저는 선사시대 구대륙에 공통됐던 원시종교 의식들에 우리 이야기의 원형()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섭한 언니나 저도 그렇지만 우리 중 상당수가 죽은 동물의 뼈를 묻고 물을 뿌려 신비한 힘을 얻게 되죠. 문명 이전의 주술사들이 하던 행위예요. 또 우리는 잔치에서 신발을 잃는데, 세계 어디서나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귀신들은 걸음걸이가 불편합니다.

아센푸텔(독일)=제 생각에는, 어린이들의 성장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 퍼지게 된 것 같아요.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리면 여성에게 최초의 연인은 아버지 아니겠어요. 이야기들마다 계모와 언니들이 악독하게 나오지만, 사리분별이 뚜렷하지 못한 어린이에게 가족 내 여자들은 모두 경쟁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왕자의 등장으로 비로소 바람직한 가족관계가 정립되고요.

여러분은 얼굴처럼 마음씨까지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언니들을 용서했으니까요.

할록=저는 달라요. 언니를 죽여 젓갈을 담갔어요. 여러분은 깜짝 놀라겠지만, (예전에는) 한국의 팥쥐도 젓갈이 되어버렸답니다. 현대로 올수록 시민적 도덕의 잣대에 맞춰 이야기를 다시 쓰다 보니 잔혹한 요소는 제거되어 버렸는데, 저희는 원래 강하고 독했어요.

서구 이론 추종 벗어나

모처럼 한국 저자의 책 속에 모이셨는데, 특히 콩쥐 씨의 감회가 남다르겠습니다.

콩쥐=서양사학자 교수인 저자의 꼼꼼한 연구 덕에 제 고국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점만 해도 의의는 크다고 생각해요. 19세기 후반 M R 콕스의 연구 덕에 345명이나 되는 동서고금의 신데렐라가 처음 모인 이후 저희는 꾸준히 학자들의 책상에 불려 다녔죠. 가장 불쾌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베텔하임이었어요. 그는 우리의 모든 이야기를 성적()으로만 해석하며 집요하게 이것저것 캐물었거든요.(웃음) 아센푸텔=이 책은 알기 쉬운 사례와 분석을 들면서 14편이나 되는 동서양의 풍부한 신데렐라류 이야기를 싣고 있어 쉽게 읽힐 거예요. 우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은 나카자와 신이치가 지은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동아시아2003년)을 읽어보셔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각자의 왕자님께 돌아가셔서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