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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산업 영화야 놀자

Posted May. 23, 2005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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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계의 거장들이 첨단 게임산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17일부터 20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05 전자오락박람회(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에는 공포영화의 거장 조지 로메로 감독이 기획 연출한 게임 시체들의 도시가 출품돼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로메로 감독은 시체들이 살아나 사람을 공격한다는 내용의 공포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등 시체 3부작으로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떠오른 감독. 그는 이 게임에서 기획과 스토리 구상, 좀비(살아서 돌아다니는 시체)의 디자인까지 도맡았다.

♦ 줄지은 '게임 감독' 선언

이번 E3에 직접 연출한 게임을 내놓은 영화감독은 로메로 감독뿐이다. 그러나 E3에 참가한 상당수 게임업체는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감독에게 게임의 시나리오 작성과 연출을 부탁하고 일부는 제작에 들어간 상태라고 밝혔다.

스플린터 셀 등의 게임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유비소프트는 영화 다이 하드의 존 맥티어넌 감독과 손잡고 러시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한 액션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

또 다른 게임업체 미드웨이게임스는 보이즈앤후드의 존 싱글턴 감독에게 두려움과 존경이라는 게임의 연출을 맡겼다. 이 게임은 주인공이 모험을 겪으며 스토리를 진행하는 어드벤처 게임의 일종.

첩혈쌍웅과 미션임파서블2로 유명한 홍콩 출신의 우위썬() 감독도 타이거힐엔터테인먼트를 세워 섀도 클랜이라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이 게임에는 우 감독의 전매특허인 화려한 권총 신이 등장한다.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타이곤스튜디오의 새 게임 시크릿 서비스의 연출을 맡았다.

♦ 영화감독이 필요한 이유

유명 영화감독이 잇달아 게임을 연출하는 이유는 게임 업계가 최근 창의력 부족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게임업체 EA는 이번 E3에 26개 게임을 선보였는데 이 중 19개가 기존 게임의 후속편이었다. 신작 7편 중에서도 배트맨 비긴스와 대부는 같은 이름의 영화를 원작으로 삼았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게임산업 역시 후속편은 전작의 인기를 발판으로 하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편과 구성이나 등장인물이 같아 독창성은 떨어진다.

EA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의 최고운영자(COO) 아카디아 김 씨는 창조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할리우드의 감독과 각본가 서너 명에게 게임 연출 및 기획을 맡기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고민은 EA만 하는 게 아니다.

미국 정보기술(IT) 관련 시장조사기관 NPD는 지난달 미국에서 발매된 게임 가운데 80%가 후속편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로메로 감독과 함께 시체들의 도시를 개발한 쿠주 액션의 개발자 제임스 브룩스비 씨는 E3 전시장에서 기자와 만나 게임은 영화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비즈니스만 강조되고 창조력은 고갈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로메로 감독과 함께 일하며 공포영화의 효과, 음악, 디자인, 스토리의 사실성 등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종합 예술의 테크닉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 한국은 어디까지

영화 제작의 노하우가 게임으로 접목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

한국에선 아직 영화감독이 직접 게임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는 일은 없다. 하지만 영화음악을 했던 작곡가가 게임의 음악을 맡고 소설가에게 게임 스토리를 맡긴 사례는 있다.

E3에서 웹젠이 선보인 온라인게임 썬은 영화 반지의 제왕의 영화음악 작곡가 하워드 쇼어 씨가 음악을 맡았다.

엔씨소프트 역시 E3 직전에 공개시험 서비스를 시작한 온라인게임 길드워에서 소설가 이인화 씨를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시켰다. 짜임새 있고 그럴듯한 스토리를 위해선 게임 전문가보다 소설가가 낫다고 생각해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게임을 잘 이해하는 소설가가 게임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자 작품의 질이 높아졌다며 게임을 단순한 오락이 아닌 문화로 봐야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