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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하벙커

Posted May. 06, 200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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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는 군사용 지하시설이다. 포격과 폭격, 그리고 화생방전 대비용이다. 골프장의 장애물이 아닌 군사시설로서 벙커가 국내에서 유명해진 것은 1026 이후다. 1979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고 남산의 정보부로 갈까 망설이다 결국 육군본부 벙커로 간다. 거기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심복들에게 유인당해 체포됨으로써 역사가 바뀐다.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벙커는 땅속 10m에 있었다. 패전 무렵 그는 벙커 안에서 전선을 벌겋게 물들이는 명령을 쏟아냈다. 우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모든 시설을 파괴하라. 내가 살든 죽든 소련군에 져선 안 된다.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기까지의 2주일간을 기록한 히틀러 최후의 14일이라는 책도 나왔다. 이라크의 후세인을 위한 지하 벙커는 7000만 달러가 투입된 호화 시설로 유명하다. 폭격에도 충격을 받지 않도록 스프링 위에 지은 방진() 건축술에는 유엔 사찰단도 감탄했다.

마오쩌둥()시대 베이징() 시내에 판 30km의 지하 방공호도 있다. 삽과 곡괭이로 10년에 걸쳐 파 들어가 1979년 완공한 이른바 지하 만리장성이다. 탄약고 군수창고 전시병원에서 영화관 도서실 경로당 이발소까지 갖춰져 있다. 지하수를 이용한 급수시설과 통풍시설도 완비돼 식량만 있으면 30만 명도 수용한다. 지금은 외화벌이 관광용으로 활용된다.

서울 여의도에서 180평 규모의 호화 벙커가 발견됐다. 서울시에도, 군에도 근거 도면이 없다. 유신시대 516광장에서 돌발사태라도 생기면 대피호로 쓰려고 만든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화장실 소파도 갖추고 타일도 깔려 고위층을 위한 시설임이 틀림없다. 작업 인부들의 입을 막고, 철통같은 보안을 취해 아무도 발설하지 못했으리라. 북한도 이런 벙커 시설엔 지지 않는다. 평양의 지하철은 일찌감치 방공호 겸용으로 판 것이다. 미국의 위성정찰을 피해 거의 모든 군사시설을 지하화했다. 벙커는 역시 독재와 군부지배의 상징인가.

김 충 식 논설위원 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