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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대장의 원정일기

Posted April. 22, 200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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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다시 북풍으로 바뀌었다. 며칠 동안 등 뒤에서 밀어주는 남풍으로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 상황이 역전됐다. 어쩌겠는가? 더 힘을 내 걸을 수밖에.

아침에 평소보다 물을 두 배 이상 넣어 끓인 멀건 죽 한 사발씩을 들이켰다. 식량이 모자라 물배라도 채워야 한다. 짐을 줄이려고 식량을 버린 것은 내 결정이었다. 불만이 터질 법한데 대원들은 군말 한 마디 없다. 그러니 더 마음이 무겁다.

앞을 보니 걱정이 태산 같다. 원정 초반 83도 지점에서 본 난빙보다 더 어마어마한 게 버티고 있다. 85도를 넘어서면 난빙이 없이 평평하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이젠 악이 바친다. 그렇다. 악으로, 깡으로 가는 것이다. 가자라고 소리를 지르고 썰매를 끌기 시작했다. 역시 오늘도 대원들은 반응이 없다. 워낙 힘들고 지치다 보니 대답하는 것 자체가 귀찮나 보다.

오전 내내 난빙 속에서 헤맸다. 이럴 때 길잡이는 더 괴롭다. 대원보다 앞서 루트를 확보한 뒤 대원들을 인도해야 하니 몇 배는 더 걸어야 한다.

난빙이 사라지니 이번엔 얼음이 깨져 바닷물이 드러난 리드가 펼쳐졌다.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든 일만 생길까.

100m 지점마다 한 개꼴로 리드가 나타난다. 고무처럼 출렁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얼음이 얼어 있어 그냥 건너갔다. 발을 옮길 때마다 출렁거려 소름이 끼치지만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오후 4시 30분, 너비가 200m는 족히 돼 보이는 리드가 앞을 가로막는다. 이번엔 바로 건널 수가 없어 빙 돌다 보니 시간만 잡아먹었다. 어제 리드에 빠져 혼났던 막내 정찬일 대원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괜찮아, 나 따라와 하고 앞장을 섰지만 불안하긴 나도 마찬가지.

리드를 지나니 오후 5시. 텐트를 쳤다. 식사 준비를 하는 대원들을 불러 모아 그동안 썰매에 숨겨 놓았던 사과 2개와 오렌지 2개, 맥주 2캔을 꺼냈다. 그리고 간식으로 먹는 미니 케이크에 성냥 4개를 꽂았다. 오늘이 홍성택 대원의 40번째 생일이다.

아니 이걸 여태 숨겨 놓고 있었단 말이에요? 순식간에 활기가 돌았다. 막내에게 생일 축하노래를 시키고 모두 박수를 쳤다. 그동안 말할 기운도 없이 지쳐 있던 대원들이 모처럼 웃고 떠든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의 팀워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