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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테러

Posted March. 03, 20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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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2월 15일. 동남아 순방 길에 자유중국에 도착한 대통령 박정희는 총통부에서 장제스() 총통과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장 총통은 매헌 윤봉길( ) 의사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시했다. 중국의 100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진정한 대장부라고 일컬었다. 장 총통은 이어 윤 의사 유족의 안부를 묻고 잘 돌봐 줄 것을 권했다. 박 대통령은 귀국 후 윤 의사 일가를 수소문해 각별한 관심과 호의를 베풀었다.

1968년 4월 29일. 박 대통령은 윤 의사의 애국 충절을 기리기 위해 의사의 고향 충남 예산에 조성된 충의사 건립식에 참석해 라는 친필 휘호를 남겼다. 전날 박 대통령은 아산 현충사에서 열린 충무공 탄신제례에도 참석했다. 만주군관학교 출신에 한때 좌익에 가담했다는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재임 중 아산 현충사 성역화와 류관순기념관 건립 등 항일기념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지방의 한 문화원장(46)이 31절 날 사적() 229호로 지정된 충의사 경내에 무단으로 들어가 사당에 걸린 박정희 친필 현판을 세 동강 내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 계단에 전시했다. 이 사람은 거사() 후 경찰에 자진 출두해 공용물 손상 및 건조물 침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박정희 친필 현판이 철거된 것은 2001년 11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삼일문 이래 두 번째다. 이를 쾌거로 받아들인 이들도 있다고 하니 박정희에 대한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두렵기만 하다.

한마디로 문화테러다. 개인의 사적() 평가를 온 국민의 평가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느 시대건 이런 부류의 확신범()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앞서 문화재청장의 현판 교체 논란에 이어 이번 일을 보면서 정권사관()이 이런 식의 개인사관()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안타깝고 걱정된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