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영웅, 누가 왜 만들어내나

Posted January. 21, 2005 23:04,   

ENGLISH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1814년 엘바 섬에 유배된 뒤부터 조롱거리가 됐다. 그를 프로이센 군인들이 갖고 노는 배드민턴공이나 큰북처럼 그린 그림들도 나돌곤 했다. 그러나 그는 1821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숨을 거둔 뒤부터 부활의 길을 걸었다.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 공작은 1830년 시민혁명 이후 의회에서 국민의 왕으로 추대된 뒤인 1833년 방돔 전승기념탑에 나폴레옹 동상을 세웠다. 나폴레옹이 시민혁명도, 부르봉 왕정도 거부했던 이미지를 빌려서 자신 역시 좌익인 공화파와 우익인 왕조 복권파의 공세에 맞서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나폴레옹 숭배 작업이 절정을 보인 것은 1840년 나폴레옹 유해를 프랑스로 환국시킨 일이었다. 유해는 애국병사의 성지인 앵발리드에 자리 잡았으며 루이 필리프는 국민총화의 구심점을 만들 수 있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를 비롯한 6명의 사학자가 함께 써낸 영웅 만들기는 타고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현존 질서를 뒤바꾼 유럽 4개국 5명의 인물이 어떻게 국민 영웅으로 등극()해 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나폴레옹을 비롯해 잔 다르크(프랑스), 엘리자베스 1세(영국), 비스마르크(독일), 무솔리니(이탈리아)가 그들이다.

이들은 1920세기 초반 조국이 민족주의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국민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했던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을 유작으로 남기고 지난해 작고한 강옥초 전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영웅은 미디어(매체)라고 지적했다.

근대 이전의 영웅은 초인적 능력을 지녔지만 대체로 국가나 민족과는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 이후의 영웅은 서로 모르는 이들을 민족으로 묶어주는 상상의 원천이 된다. 영웅들은 민족 정체성이라는 숨은 신이 되어 구성원의 내면을 조종해갔다.

특히 이 책이 조명한 것은 영웅 자체의 삶보다 영웅이 사후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영웅 만들기가 필요했던 사회적 맥락과 곡절, 거기에 힘을 보탠 갖가지 그림 소설 영화 등 문화적 텍스트들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뒤따른다. 이 점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다. 나폴레옹의 부활 과정에 대한 관찰 역시 마찬가지다.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은 삼촌의 후광을 입고 1848년 선거에서 대통령이 됐다. 그가 황제가 돼 독재에 나서자 삼촌 나폴레옹을 자기 출세만 생각한 용병대장으로 몰아가는 흑색선전이 돌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이 영웅으로 소생한 것은 그의 후손인 대공 제롬이 제위()를 요구하다 1890년 숨진 후부터다. 프랑스인들은 제정()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그때부터 나폴레옹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아니라 민족주의적 열정을 가졌던 구국의 영웅으로서였다.

그러면 나폴레옹은 어떻게 소생했는가. 우선 에드몽 르펠르티에는 1895년 소설 마리 루이즈의 배신을 통해 나폴레옹에게 등을 돌린 독일 출신의 황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분노를 드러냈다. 1900년에는 당시 프랑스의 적국 오스트리아에서 쓸쓸히 숨져간 나폴레옹의 아들 라이히슈타트 공의 삶을 담은 연극 작은 독수리가 무대에 올려져 프랑스 좌우파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이들은 곧 프로이센-프랑스전쟁에서 패배했던 프랑스인들의 심리에 깔린 복수심을 자극했다. 이후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은 잔 다르크와 함께 프랑스인들에게 제국주의적 충동을 일으키는 데 동원된다. 이는 엘리자베스 1세나 비스마르크, 무솔리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 교수는 과거는 역사가들이 한가로이 거니는 중립지역이 아니라 치열한 전장이며, 이는 영웅을 만들고 전승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는 어떠한가. 군부독재에 대한 우려가 거의 사라질 무렵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박정희에 대한 추억들, 그리고 최근 잇따르고 있는 박정희 시절의 비밀문건 공개도 전장의 모습은 아닐는지.



권기태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