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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맨발의 성자

Posted December. 23, 200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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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PD 김우현 씨가 최춘선 할아버지의 거칠고 더러운 맨발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초여름이었다. 괴이한 행색을 한 채 지하철에서 알아듣기 힘든 언어로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할아버지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겨울에도 맨발로 거리를 오가는 할아버지를 광신도이거나 미친 사람 취급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향해 남북통일이 되기 전엔 절대로 신발 안 신는다고 외쳤다.

김 PD는 이후 6년에 걸쳐 할아버지를 추적했고, 2년의 편집기간을 거쳐 2003년 여름 팔복()이라는 34분짜리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김 PD는 할아버지가 미스코리아 유관순! Why Two Korea 미스터코리아 안중근! Why Two Korea라고 외친 이유를 알게 된다. 안중근 유관순 같은 분들이 참 한국인이며 그런 이들만 계신다면 왜 두 개의 한국이 있겠느냐는 의미였던 것이다. 조국 분단의 아픔을 나눈다는 의미로 30년 이상 맨발을 고집한 것도 비로소 알게 됐다.

어느 날 할아버지 댁을 찾아간 김 PD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할아버지는 번듯한 주택에 살고 있었고, 5남매를 목사와 교수 등으로 길러낸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천사라고 불렀다. 큰 부잣집 아들이었던 할아버지가 도쿄 유학 중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백범 김구 선생을 도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도 듣게 된다. 유산으로 받은 땅은 모두 가난한 이들과 실향민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고, 무서운 사람이 없고, 보기 싫은 사람이 없다고 할아버지는 수줍은 듯 말했다.

할아버지는 2001년 9월 82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자손들은 분단 현실이 부끄럽다며 일체의 보상을 사양했던 할아버지를 대전국립묘지 제2애국지사묘역에 모셨다. 김 PD는 최근 할아버지의 동영상을 담은 DVD 팔복과 못다 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동영상은 인터넷과 전국의 교회를 통해 감동의 물결로 이어지고 있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세상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 저 낮은 곳에 머물다 간 맨발의 성자()였을 것이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