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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역사를 만든 앵커들

Posted December. 01, 200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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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공중파 TV인 NBC, ABC, CBS의 저녁 뉴스 앵커들에 의해 20년 동안 유지돼 온 트로이카 앵커시대가 저물고 있다. NBC 앵커 톰 브로코(64)가 1일 고별방송을 하고 CBS의 댄 래더(73)는 월터 크롱카이트에게서 앵커직을 물려받은 지 만 24년이 되는 내년 3월 9일 물러난다. ABC의 피터 제닝스(66)는 물러날 계획을 밝힌 적이 없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시간문제로 보인다. NBC뉴스는 2일 45세의 브라이언 윌리엄스로 세대교체를 한다.

3명의 앵커가 뉴스를 진행한 기간을 합하면 약 70년이나 된다. 방송에 종사한 기간은 무려 130년. 이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현장에서부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장, 베를린 장벽과 중국 톈안먼() 광장 같은 대사건의 현장을 취재하고 역사를 만들었다. 텍사스 출신의 남성적인 카우보이 앵커맨 래더, 중서부 출신의 상식과 품위가 돋보인 브로코, 캐나다 출신으로 긴급뉴스 큐레이터로 불리는 제닝스는 각각 독특한 개성과 이미지로 미국인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 왔다.

브로코는 떠날 때가 됐다는 이유로, 래더는 대선 기간에 발생한 오보사건을 계기로 물러나게 됐다. 뉴스 전문 케이블 TV와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은 공중파 TV의 변신 필요성도 무시할 수 없는 퇴진 배경이다. 1990년대 초만 해도 3대 방송 뉴스의 전체 시청자가 하루 평균 3600만3800만명이나 됐다. 하지만 현재는 모두 한 자릿수 시청률에 전체 시청자가 2800만명에 머무르는 등 하락세에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 이들의 막강한 영향력은 미국 정계를 쥐락펴락할 정도였다.

래더는 앵커직에서 물러난 뒤 탐사보도프로의 현장기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미국 대선을 10번이나 취재한 브로코도 방송계를 완전히 떠나는 건 아니다. 이들이 한 시대를 풍미한 것은 미국적 프로페셔널리즘, 수백만달러의 연봉과 영예가 보장되는 스타시스템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새삼스레 경험과 능력보다 외모와 정치적 배경이 중시되고, 유명세가 정계 진출 수단이 되는 한국 방송계를 떠올리게 된다.



권순택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