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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과에 관한 명상

Posted November. 14, 200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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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는 인류 최초의 팜 파탈이다. 남자를 유혹하고 파괴하는 요부() 팜 파탈 이미지는 성서의 창세기에서 비롯된다. 뱀의 꾐에 넘어가 사과를 따 먹은 이브는 아담에게도 권한다. 아담은 사과를 든 채 망설인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에덴동산의 금기를 깨고 선악과를 먹은 두 사람은 알몸의 수치감과 선과 악, 삶과 죽음의 차이도 알게 된다. 인식의 분별력과 원죄설()이 눈뜨는 순간이다.

사과는 지중해 문명사에서도 중요한 상징이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제우스에게 사과를 던져 주며 최고의 미인에게 주라고 주문한다. 당황한 제우스는 트로이 왕의 아들 파리스에게 사과를 건네며 책임을 회피한다. 아프로디테가 그 사과를 주면 최고의 미인 헬레나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를 납치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그리스 함대가 트로이와 싸운 이야기를 담은 서사시다. 그리스가 지중해상에서 절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서양의 교통요지였던 트로이를 함락했기 때문이다.

사과 하면 뉴턴의 사과도 빼놓을 수 없다. 우주를 거대한 기계라고 생각했던 그는 떨어지는 사과에서 만유인력을 발견한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힘이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힘, 인간이 우주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 것이 모두 만유인력 때문이라는 학설이다. 우주가 신성이 아닌 만유인력으로 가득 찬 곳이라니. 신에 대한 회의는 인간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단지 생각하는 기계란 말인가.

세잔은 뉴턴의 사과를 부정한다. 그는 사과가 있는 정물화를 통해 불확실성에 의한 다층적 시간과 공간을 표출해 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기보다 15년이나 앞서 무질서하게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세잔의 사과가 상징하는 혼돈과 불확실성은 21세기에도 유효한 화두()다. 인류의 문명사를 바꾼 사과. 사과는 배설작용에 좋고 고혈압을 막아 주는 과일이기도 하다. 이 가을, 달콤한 사과 하나 깨물면서 멋지게 사과()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지. 상대방의 사과만을 요구하는 요즘 국회를 지켜보다 떠오른 생각이다. 김 미 진 객원논설위원소설가

usedrea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