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원수였던 사이가 이승에서 부부로 만나고, 사랑했던 사이는 부모 자식으로 만난다는 말이 있다. 죽어라고 싸우는 부부를 보거나, 죽고 못 사는 부녀 또는 모자를 보면 실감이 난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다음 생에 부부로 만나게 될 현생()의 원수에게도 잘해 주고, 다음 생에 부모 자식 사이로 만나게 될 이에게는 더욱 잘해 줄 수밖에.
원로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 선생이 부인 별세 후 곡기를 끊고 애통해 하다가 장례 후 산소에 다녀와 그 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향년 84세로, 부인이 세상을 뜬 지 꼭 닷새 만의 일이다. 낙상()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노년을 보낸 시인을 15년간 분골쇄신() 돌봤다는 아내와 병석의 부인에게 자네를 전생에서 본 것 같네. 우리의 이생은 다 끝났나 보네라고 독백했다는 시인의 애틋함이 가슴을 적신다.
춘원 이광수( )가 쓴 소설 사랑의 주인공인 안빈의 실제 모델인 고() 장기려(19111995) 박사는 북한에 남겨두고 온 아내를 그리며 40여년을 수절했다. 옛 애인이 남편과 사별하자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하며 맞아준 초혼 남편도 있고, 해마다 새 남편과 함께 전 남편 기일에 맞춰 묘소에 꽃다발을 바치는 재혼 아내도 있다. 바람피운 아내를 감싸며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매력이 있으면 그랬겠느냐는 어록을 남긴 저명인사도 있지 않은가. 어디 인간뿐이랴. 얼마 전에는 자동차에 치여 죽은 짝을 슬퍼하며 애처롭게 몸부림치는 제비의 연속 사진이 누리꾼(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한 일본 신문의 올 상반기 히트상품 조사에서 순애보 상품이 1,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순애보를 소재로 한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TV 드라마 겨울연가가 1, 2위를 휩쓸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통상 10년 주기로 순애보 붐이 반복되는 것으로 본다. 넘치는 성()과 불륜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날 전해진 학()같이 살다간 노()시인의 순애보에 세상이 이처럼 옷깃을 여미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만큼 순애보에 목말라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