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문화재 길들이기

Posted October. 19, 2004 23:07,   

서양의 궁궐은 살아 있다.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가 살고 있거나 박물관 또는 기념관으로 살아 숨쉬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궁궐은 죽어 있다. 왕정이 종말을 고하며 왕족 또한 망국()의 멍에를 짊어지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서울에 다섯 개의 큰 고궁이 있지만 관람 시간이 끝나면 곧 죽은 공간이 돼 버린다. 로마 런던 파리에는 제국의 영욕()과 유구한 역사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서울은 조선왕조 500년의 박제된 역사가 숨쉬고 있을 뿐이다.

사람의 손때와 훈기()가 닿지 않는 문화재는 골동품이나 다름없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문화재가 더 잘 보존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목조 건축물이나 악기 등은 사람의 숨결과 손때가 적당히 묻는 것이 좋다고 한다. 허름한 초가집이라고 해도 사람이 정성껏 돌보면 몇백 년을 버티지만 고래 등 같은 기와집도 사람이 떠나면 곧 폐가가 돼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일 오후 경회루(국보 제224호)에서는 조촐하지만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40여년 동안 일반인의 입장이 금지돼 왔던 경회루의 일반 공개를 앞두고 누마루 바닥 길들이기 행사가 열린 것이다. 참석자들은 물걸레와 비를 들고 드넓은 2층 누마루를 정성껏 털고 닦아 냈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경회루를 일반에 개방하되 2층에 한해서는 인터넷 예약을 통해 제한적으로 별도 유료 관람을 허가할 방침이라고 한다. 창덕궁 후원()에 이어 또 하나의 출입금지 구역이 풀린 것이다.

태종 12년(1412년) 건립돼 고종 4년(1867년) 중건된 경회루는 건물 면적 290평, 연못 면적 4375평 규모로 우리나라 누각(다락집) 중 제일 규모가 크다. 근정전()이 왕의 집무 공간이라면 경회루는 사색과 휴식, 그리고 임금과 신하의 경사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던 공간이다. 한국미의 최대 감식안인 고 최순우() 선생은 경회루 집채를 떠받들고 있는 48개의 화강석 돌기둥을 한국 건축미의 백미로 꼽은 바 있다. 늦가을 경회루 2층에서 마주하는 인왕산 전경 또한 서울에서 으뜸가는 경관으로 꼽힌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