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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이성과 감정

Posted September. 12, 200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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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인류를 생물분류학에서는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르는데,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본능에 의존해 생활하는 대부분의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머리를 써서 생각하고 논리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일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본능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에 의존한다는 생각은 오래되었다. 고전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 경제활동을 한다고 믿고 있다.

물론 세상이 항상 경제학적 모델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지만, 경제학자들은 모델을 정교하게 만듦으로써 현실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최근 발달한 행동 경제학(신경 경제학)은 인간 행동에 대한 근본 가정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한 학자는 인간의 행동이 이성과 감정이라는 두 마리 말에 이끌리는 쌍두마차라는 비유는 옳지만, 이성은 작은 조랑말일 뿐이고 감정은 커다란 코끼리만 하다고 주장한다.

행동 경제학의 중요한 실험도구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장치다. 이 장비를 이용하면 사람들이 경제적 결정을 내릴 때 뇌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과거 이해하기 어려웠던 경제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 투자자들이 과연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주식을 파는 것인지, 혹은 막연한 공포에 휩싸여 투매하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fMRI 장비로 사람들의 정치적인 판단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자신과 국가 미래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얼마나 작용하는지, 정치가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개인적인 욕심이나 감정을 얼마나 억제할 수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MRI의 세계적 권위자를 영입하는 등 뇌 과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수도 이전과 과거사 청산, 보안법 개폐 등 굵직한 정치적 사안이 끊임없이 제기돼 있어 실험 대상도 충분하니 이러한 연구에 이상적인 환경이 아닐까.

오 세 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sjoh@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