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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괴로워

Posted August. 19, 2004 22:07,   

직장인인지 수험생인지=서울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A씨(31)는 요즘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회사 현관과 복도에 달려 있는 폐쇄회로TV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체크하고 있기 때문.

지각은 물론이고 업무시간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

A씨는 지각하는 모습을 찍힌 사진이 위에 보고된다는 소문이 돌아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인사부 직원에게 적발돼 한번 봐달라고 하소연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라고 털어놨다.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도 지난달 인사부원을 현관에 배치해 놓고 명찰 복장 및 두발 상태를 단속해 그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했다가 직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중단한 바 있다.

한 홈쇼핑업체는 매달 환경미화 검사를 실시해 부서별로 등수를 매긴 뒤 이를 공지한다. 책상정리 상태를 비롯해 사무실 분위기가 쾌적한지, 쓰레기통은 잘 비우는지 등이 평가 대상. 꼴찌 부서는 사장에게서 직접 야단을 맞게 된다.

이 회사 직원 박모씨(31)는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사내에 감원설이 나돌고 있다며 이 와중에 청소검사에서 찍혀 불이익을 당할까봐 다들 조마조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활동도 제한을 받고 있다.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26)는 불경기에 노조 가입을 은근히 막는 듯한 사내교육을 하는 통에 신입사원들이 아무도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밥값이 얼마나 한다고=서울 강남의 한 벤처회사에 근무하는 정모씨(26)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저녁식사 값으로 무조건 5000원씩 지급돼 왔으나 두 달 전부터 실비만 지급되고 있기 때문. 이마저도 영수증을 매번 청구해야 하고 액수가 5000원이 넘으면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자동차부품업체에 근무하는 이모씨(35)는 지난달부터 휴대전화 보조비와 차량유지비가 없어졌고 접대비도 부서장 전결에서 사장 결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신용카드 등 자사 제품의 판매를 사무직 직원들에게 강제로 할당하는 모습은 이제 보편적인 현상.

여의도의 한 보험회사는 직원들에게 지난해 분기당 50만원씩 고객 적금을 유치하도록 했지만 올해는 그 액수를 300만원으로 늘렸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김모씨(27)는 어려운 건 알겠지만 강제 할당으로 본업은 아예 뒷전이 돼 버렸다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자폭(자기 돈으로 할당량을 채우는 것)하는 직장인들도 주위에 많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노동연구소 이정식 교수는 사생활 간섭이나 이른 출근, 야근을 통한 근무시간 연장은 구시대적인 통제방식이라며 주5일제와 경기불황 등으로 노동 강도가 세질 수는 있지만 지나칠 경우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