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우물물을 일삼아 끝도 없이 마셔대던 시절이 있었다.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 많은 아이들이 하루 한 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었고 느껴야 했던 때가 있었다. 먼 옛날도 아닌 1960, 70년대 이야기다. 황금찬 시인은 그 시절 보릿고개 체험을 이런 시로 남겼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 -굶으며 넘었다. / / 코리아의 보릿고개, /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 지금 내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이랬던 한국이 30여년 만에 세계에서 11번째 가는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원동력을 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분석한다. 엘리트 집단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거나, 국민 대다수가 부지런했기 때문이라거나, 외국의 원조 덕분이라거나. 그러나 이 땅의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직감으로 안다. 자식 굶기는 것을 세상에 제일가는 죄로 알았던 부모를 국민으로 둔 나라였기에 허리띠 졸라매고 경제를 일으켜 세웠음을.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으니 당연히 없어진 문제려니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굶는다고 한다. 평소 학교에서 급식지원을 받아 오던 서울시내 초중고교생 30만명 가운데 26만5000명은 여름방학 때 점심식사를 자체 해결해야 하고, 그 중 상당수는 굶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풀뿌리와 나무껍질 말고는 먹을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해마다 버리는 음식이 10조원에 이르는 시대에 말이다.
30만명 중 절대빈곤층에 해당하는 3만5000명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쿠폰으로 근처 식당이나 복지관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00원짜리 쿠폰으로 밥다운 밥을 먹을지, 손님 대접은 제대로 받을지 의문이다. 식당 한구석에서 수치심을 참아가며 밥술을 뜨느니 차라리 굶겠다는 아이들이 실제 있다고 한다. 어릴 때 밥을 굶으면서 맛본 좌절감은 평생을 가도 지워지지 않는다. 정부는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모르는 국책사업에 쓸 돈이 있으면 아이들의 배고픔과 상처부터 어루만져야 한다. 이 땅의 수많은 부모를 자식 굶기는 죄인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천 광 암 논설위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