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동부의 한반도, 러시아, 일본에 둘러싸인 남북 1700km, 동서 1100km의 타원형 해역. 이 바다를 한국은 동해(East Sea), 일본은 일본해(Sea of Japan)라고 부른다.
문제의 발단은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가 해도 작성의 기준이 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라는 책자에서 이 바다를 일본해라고 명명한 것.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 수정판이 나온 1953년 한국은 전쟁 중이었다. 그 사이 세계 각국은 이 책자를 근거로 일본해라는 표기를 사용했다. 동해 또는 옛 지도에 나오던 조선해 한국해라는 이름은 수십년간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제22차 유엔지명전문가회의(UNCSGN)에서 동해 표기 문제는 새 국면을 맞았다. 이 회의는 표기 문제에 대해 양자-다자적 해결책 마련을 권고했다. 유엔이 동해 표기에 관해 양국에 해결책 마련을 공식 권고한 것은 처음. 따라서 최소한 동해와 일본해가 병기돼야 한다는 한국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그러나 IHO가 올해 1953년 이후 처음으로 3차 개정판을 낼 예정이어서 동해 명칭의 복원은 올해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경과=한국의 궁극적 목표는 수천년간 사용해 온 동해 명칭의 회복. 그러나 일본해가 국제명칭으로 올라 있는 현실을 감안해 동해 병기를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1991년 유엔에 가입한 한국은 이듬해부터 관련 국제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일본에 의해 줄곧 거부당했다.
2002년 IHO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 3차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합의를 종용했다. 합의되지 않으면 바다 이름을 아예 빼거나 해당 페이지를 누락시킨 채 발간하겠다며 회원국 투표에 부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로비로 투표는 중단됐다. 책자는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지도는 1953년판에 따라 제작되고 있다.
북한은 조선동해(East Sea of Korea) 표기를 주장해 오다 2년 전부터 한국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한글 표기는 여전히 조선동해를 쓴다. 러시아와 중국도 한국을 지지하는 쪽이다.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 각국 민간전문가들도 최소한 동해-일본해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추세다.
제2라운드=지난달 말 UNCSGN에 참석한 서울대 이기석 교수(지리교육과)는 2년 전 IHO가 일본해 단독 표기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데 이어 이번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해결을 촉구했다며 문제인식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한국의 문제 제기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던 일본은 이번엔 한국과 협의하겠다고 먼저 제시했다. 회의는 17일 서울에서 열린다.
한국측 교체수석대표였던 하찬호 주유엔대표부 공사는 지난해 서울 회의에서 일본은 협의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며 그러나 올해는 유엔 권고를 무시했다는 비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경해진 일본=일본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최근 2년간 지도 제작회사, 각종 미디어, 출판사, 여행 관련 정보 인터넷 사이트가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
이번 UNCSGN에서 일본 대표 스미 시게키() 외무성 참사관은 일부 지도 제작회사가 동해를 병기한 것은 잘못이라며 방관하지 않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각국 대표들도 한국 대표단에 일본이 외교력을 총동원하는 것 같다며 일본측의 로비 공세를 전달했다.
2년 전 IHO에서 투표가 진행될 때 일본 매스컴들은 세계지도에서 일본해가 사라진다며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일본 정부도 적극 나섰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국방부 수로국 해도 2003년 판에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했다가 올해 다시 일본해로 원위치했다.
동해-일본해 표기 싸움은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 네티즌들이 동해 표기 숫자를 하나 늘려갈 때마다 일본이 항의, 자료제공, 로비 등으로 환원시키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2년 전 책자를 발간하지 못한 IHO는 조만간 작업을 마무리할 태세다. 최근 IHO는 가까운 장래에 3차 개정판 최종안을 회원국에 회람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책자에 동해 표기를 반영하지 못하면 앞으로는 더 어려워질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