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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야 양보못해" 미-러 신냉전

Posted December. 05, 2003 22:49,   

미국과 러시아가 카프카스 산맥의 옛 소련 공화국 그루지야에서 제2의 냉전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4일 그루지야에서 신()냉전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양국은 지난달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의 퇴진을 계기로 그루지야를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한 경쟁에 들어갔다. 그루지야는 인구 550만명의 소국이지만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전략요충지이며, 카스피해 유전에서 나온 석유를 유럽으로 운송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 몰아내기 나선 미국=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5일 전격적으로 그루지야를 방문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니노 부르자나제 대통령 권한대행과 내년 1월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미하일 사카슈빌리 국민행동당 당수를 만날 예정이다.

앞서 3일에는 린 파스코 미 국무부 차관보가 다녀가는 등 미국 고위관리들의 그루지야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파스코 차관보를 통해 자진 사임한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해 위로하기도 했다.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의 사임을 가져온 시민혁명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국은 경제지원을 지렛대로 이번에는 그루지야에 반드시 친미정권을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미국은 다른 한편으로 냉전 이후 가장 강한 수준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2일 그루지야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의 즉각적인 철군과 러시아의 그루지야 정치개입 중지를 요구했다.

그루지야 지키기 나선 러시아=미국의 공세에 러시아도 다급해졌다. 미국 주재 대사를 지낸 외교통인 블라디미르 루킨 하원 부의장은 4일 그루지야가 친()러시아 노선을 유지하지 않는 한 통일국가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루지야가 러시아권에서 이탈하면 분할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그루지야 내 3개 자치공화국인 아자리야, 압하지야, 남()오세티야는 모두 러시아의 보호와 지원을 받으며 사실상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다. 러시아로서는 그루지야 차기 정권이 탈()러시아 움직임을 본격화하면 아예 그루지야 해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1999년 그루지야에서 철군하겠다고 약속했던 러시아는 약속을 이행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2일 철군할 정치적 의사는 있다(블라디미르 치조프 외무차관)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군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10년은 더 주둔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그루지야에서 철수할 의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 속내다.

그러나 미국이 대규모 경제지원을 무기로 그루지야 진출을 본격화하면 러시아가 이에 대응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 고민이다.



김기현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