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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천지는 눈천지

Posted September. 17, 2003 23:18,   

9월 천지는 눈천지

오후 3시 53분. 승객 110명을 태운 북한 고려 항공의 러시아 산 투폴레프 기종 여객기가 평양 항공 역(순안 비행장)의 계류장을 떠나 천천히 활주로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백두산 천지 아래 첫 동네인 삼지연군(양강도)으로 가는 고려 항공의 JS 5277편 특별기다. 항로상 거리는 500km, 소요 시간은 이륙 후 50분.

백두고원(개마고원을 북한에서는 이렇게 불렀다)의 삼지연 비행장에 착륙했다. 등반용 시계의 고도계는 1500m(정확한 수치는 아님)을 가리켰다. 태백산 정상(1547m) 높이. 말로만 듣던 백두고원을 실감케 했다.

이튿날 새벽.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로 향했다. 삼지연 읍에서 거리는 46km. 해발 1950m의 트리 라인(Tree Line수목 생장 한계선)을 지나자 용암대지의 민둥산 등성이 펼쳐졌다. 예서 천지까지는 14km. 백두 다리(해발 2120m)로 소백수를 건너자 가파른 산길이 이어졌다. 경비 초소를 지나 삼지연 42km 백두 밀영 38km라고 쓰인 이정표를 지나 비포장도로로 들어서니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천지가 지척이다.

주차장에는 지상궤도식 삭도(89년 준공한 지상케이블카) 백두 역이 있다. 천지의 향도봉까지 운행된다. 천지 13연봉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는 향도 봉(2712m). 군인 복장의 여성 안내원 5명이 반갑게 맞았다. 발아래 놓인 천지. 거대한 칼데라의 호안은 하얀 눈으로 듬성듬성 덮였다. 천지에는 9월에도 눈이 1m씩 내렸다.

천지 바깥을 보자. 천리수해()의 나무바다가 하늘과 맞닿는 곳까지 펼쳐졌다. 그 대지의 끝, 지평선에서 밝은 빛줄기가 터져 나왔다. 해돋이다. 여명이 사라지고 백두고원의 웅자가 드러났다. 천지 연봉도 하나 둘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들었다. 청아한 호수 물 빛깔도 드러났다.

천지 수면의 고도는 2199.6m. 향도봉(향도역2600m)에서 곤돌라(길이 1200m)를 타고 천지로 내려갔다. 중국 쪽에서 바라만 보았던 천지. 두 손에 담아 들이 켰다.

5일간의 백두산 여행. 노정은 모두 주변의 백두고원에서 이뤄졌고 여행길은 주로 일제가 1930년대에 국경 수비를 위해 건설한 갑무 경비 도로(갑산무산)를 따랐다. 그 백두고원을 여행하는 4일간. 기자는 설렘을 가눌 수 없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천리수해의 나무바다를 가르는 갑무 경비 도로를 지나면서 북미 대륙의 로키산맥, 북유럽 핀란드의 광활한 침엽수림대를 여행할 때 가졌던 부러움을 떨쳐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균 고도 1400m의 고지인 백두고원. 그 위를 뒤덮고 있는 원시림으로 이뤄진 천리수해란 버스가 두 시간을 달려도 높이 30m급의 잎갈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을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숲의 바다다. 10분 만에 길가 숲에서 빵버섯을 한 광주리나 따고 10월 중순에도 하루 밤새 눈이 2m50cm나 쌓이며 5월 중순까지 눈이 쌓인다는 삼지연 백두고원의 대자연. 말 사슴이 숲 속을 누비고 호랑이가 아직도 있을 거라고 모두가 믿는 곳 거대한 백두 산. 그 아래에 펼쳐진 백두고원의 이 황홀한 대자연은 누구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