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대통령의 문화예술적 소양은 그 나라 문화 수준에 대한 바로미터다. 문화적 안목이 높고 심미안이 빼어난 대통령은 국민의 자랑일 뿐더러 그 나라의 문화적 경쟁력을 높여 준다.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얀 파데레프스키, 체코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 동티모르의 시인 사나나 구스마오 등 예술가 출신 대통령들은 그래서 세계인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미국 백악관은 국빈 만찬 때 문화예술인과 할리우드 스타들을 대거 초청해 분위기를 띄운다.
클래식 애호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유럽 순방 테마 문화기행이 화제다. 첫 방문지인 독일에서 그는 바이로이트 바그너 음악제에 참석해 장장 5시간 동안 오페라 탄호이저를 관람했다. 폴란드에선 작곡가 쇼팽의 심장이 안치돼 있는 바르샤바 시내 교회를 방문했고, 체코에서는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스메타나의 묘지가 있는 프라하 교외에 찾아가 헌화했다. 또 체코 총리와의 국빈만찬에서는 혼다사가 제작한 말하는 로봇 아시모를 데리고 나타나 체코 총리와 악수를 하고 건배도 나누게 했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1년 자신의 희곡에 단순하고 고된 일이라는 뜻의 체코어 로보타를 사용한 것을 염두에 둔 고도의 문화외교였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도 1993년 테제베(TGV)가 경부고속철도 우선 협상 대상 차종으로 선정되자 유명 문화예술인을 대거 동반해 서울에 나타났다. 여배우 소피 마르소, 조각가 세자르 발타치니, 건축가 장 자크 페르니에, 이문열씨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출간한 출판사 사장 겸 작가 위베르 니센 등.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지만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도서 중 두권을 들고 와 한 권을 놓고 간 것도 한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문화 마케팅 전략이었다.
취임 6개월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도 이제 골프장 외에 공연장 영화관 미술관 패션쇼 등을 자주 찾아다닐 때가 됐다. 노 대통령 취임 후 공식적 문화나들이는 자신의 후원자가 출연한 연극관람과 TV에 나와 청소년 권장도서를 추천한 것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추천한 도서가 한 달여 만에 4만부나 팔려 나갔고 대통령이 휴가지에 갖고 간 책도 판매 상승세를 탔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 영화감독 출신의 문화관광부 장관과 대통령 주변 참모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우리 문화 예술의 최고 브랜드이자 1등 세일즈맨이어야 한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