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테러를 명분으로 내건 이번 이라크전쟁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대통령궁까지 사찰을 받겠다며 매달리던 사담 후세인 정권에는 가혹한 군사적 응징이 가해지고 있고, 제국주의에 맞서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은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는 평화적 외교적으로 대응하겠다니 미국의 입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사람들은 이라크전쟁의 진정한 이유가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단정하곤 한다.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석유 매장량이 많은 나라임에도 그간 미국과 영국은 개발권 확보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게다가 이라크 이란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들이 속속 거래 통화를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전환함에 따라 달러의 유일 패권적 지위에 흠집이 생기고 있다. 무역과 재정 양 부문의 막대한 적자로 인해 해외자본에 의존해야 하는 미국으로선 석유수출국기구(OPEC)마저 유로화를 공식 화폐로 채택한다면 달러화 이탈현상이 극단으로 치달아 미국 내 금융자산가격이 폭락하는 미증유의 금융위기 상황을 우려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경제전으로만 속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도 911테러 이후의 미국은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본토가 잠재적인 적으로부터 공격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미국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고 덕분에 강경론자들의 입지는 매우 넓어졌다. 바로 이 때문에 이른바 강경 매파 4인방인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부장관, 리처드 펄 전임 국방정책위원장이 외치는 고단위 선제공격 노선이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들 4인방의 배후에 신보수주의 세력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신보수란 1970년대 초 공화당 내 극우세력과 민주당 내 반공세력이 결집한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의 합작품인 동서해빙정책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뒤 팽배해진 공산정권에 대한 무력감에서 빚어졌다고 비판하면서 부상했다. 제럴드 포드 정권 때는 군사력 평가를 위한 B-팀을 만들어 소련의 위협을 과대 포장함으로써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 내의 유화론자들을 압박했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출범하자 이들은 힘의 균형 전략을 힘에 의한 제압으로 바꾸어 소련 해체를 주도했고, 91년 걸프전 때에도 강경진압책을 입안했다. 이처럼 미국의 신보수는 뿌리가 매우 깊고 강고하며 퇴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뜻 납득할 수 없는 이번 전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이 찬 근 객원논설위원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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