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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하철 방화참사 막을 길 없었나

Posted February. 18, 2003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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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재난이었다고는 하나 기름통 하나가 일으킨 불에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날 정도로 지하철은 취약했다. 1995년 일본 도쿄 지하철역에서 사이비종교 신도가 살포한 사린 독가스로 12명이 죽고 5500명이 중상을 당한 사고를 연상시킨다. 대구 사고는 독가스나 폭탄도 아니고 인화물질에 의해 일어난 화재임에도 사망자 수가 도쿄 사고를 훨씬 앞질러 참담한 심정이다.

러시아워를 비켰기에 망정이지 인파가 밀리는 출퇴근 시간이었더라면 사상자가 얼마나 더 늘어났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하철 타기가 겁이 날 지경이다. 불이 난 후 세 시간 동안 유독가스와 연기로 진화와 부상자 수송에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사상자가 더 늘어났다는 것도 그렇다. 다중이 드나드는 지하철역에 유독가스 배출시설과 긴급 구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원활히 작동을 했더라도 이토록 피해가 컸을지 의문이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가 개발경제시대 초기에 건설된 하드웨어의 부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대구 지하철역 사고는 대형 시설 안전관리 소프트웨어의 결함을 드러낸 것이다. 대형건물이나 시설을 외형상 번듯하게 지어놓는 기술은 갖추었지만 긴급상황에서 인명 구조와 관련된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도쿄 지하철역 독가스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지하철역 터미널 등 대중교통시설과 극장 백화점 등 다중이용시설에 제독제를 비치하고 화생방 조직을 편성하는 법석을 떤 일이 엊그제 같다. 우리는 냄비처럼 빨리 끓었다가 빨리 식어버리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그저 그때만 지나면 그만이다. 참사는 그래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구 사고는 세계가 테러 등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죄와 전쟁 중인 시점에서 우리의 취약점을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우발적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사망자가 늘어나는 시스템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