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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U2

Posted January. 27, 200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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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1일 미국의 U-2 첩보기가 구소련 영내 스베르들로프스크 근처에서 소련 미사일에 격추됐다.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발진해 소련 영토를 동서로 가로지른 후 노르웨이에 기착키로 예정돼 있던 비행기였다. 조종사 프랜시스 개리 파워즈는 소련의 포로가 됐다. 그로부터 4개월 후 미국 뉴욕의 유엔총회장에서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구두를 벗어 단상을 두드려가면서 미국을 비난하는, 냉전시절의 대표적 장면 중 하나를 연출했다(그러나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지낸 흐루시초프의 외아들은 지난해 구두 사건의 구체적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무릇 무기란 것이 다 그렇지만, U-2기는 특히 치열했던 냉전 대결이 낳은 산물이라고 부를 만하다. 50년대 후반 흐루시초프는 서방에 대해 우리가 당신네 장례식을 치러 주겠다고 허풍을 떨었고, 서방세계는 이 같은 협박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던 분위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경악했던 미국은 장거리 폭격기 부문에서도 소련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 대통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의 장막 안을 들여다보려고 했고, 그 한 가지 방안으로 앨런 덜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U-2기 개발을 직접 지시했던 것이다.

U-2기 개발에서 핵심 과제는 적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고고도() 장거리 비행을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점이었다. 이를 위해 록히드사의 비밀개발팀은 날개폭을 기형적으로 길게 한다든지, 기체를 최대한 가볍게 만들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냈다. 그 결과 56년 7월에 있었던 최초의 소련영공 비행에서 U-2기는 지상 20 상공을 유유히 날면서 추격해 온 소련 요격기들을 닭 쫓던 개로 만들었다. 그 후 U-2기는 62년 쿠바에 배치된 소련 미사일을 탐지해내는 등 수많은 활약으로 미 첩보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엊그제 경기 화성시에서 U-2기 추락사고가 일어나 이 비행기가 다시 한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 일상은 평화로운 듯 싶지만 보이지 않는 하늘 저 꼭대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한 첩보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새삼 일깨워 준 사고였다. 더구나 이번 사고는 북한 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위기설이 수그러들지 않는 시점에 발생해 그런지 더욱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한반도가 냉전의 고도()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벗어버리고 U-2기의 첩보비행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