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다 숨진 조천훈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무참하게 유린하는 수사기관의 가혹행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온몸을 마구 때려 쇼크나 뇌출혈로 숨지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부검 결과는 조씨의 죽음이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오랜 권위주의의 사슬을 끊는 계기가 된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은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아무런 방어수단도 없는 한 시민이 밀폐된 곳에서 흉포한 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폭행을 당해 숨질 때까지의 과정에서 조씨가 느꼈을 고통과 절망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리기도 한다.
이번 참사를 예고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검찰 관계자들의 반응은 우리를 더욱 당혹케 한다. 이는 야만적 고문 관행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김진환 서울지검장이 대국민사죄문에서 의욕이 지나쳐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 정상을 참작해달라고 말한 것이나 검찰 일각에서 담당검사에 대한 동정론까지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얘기다.
검찰이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도 전에 무릎을 꿇린 적은 있으나 가혹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나 유족과의 합의를 서두른 것도 한심한 처사였다. 이런저런 분위기를 종합하면 결국 검찰이 정신을 차리려면 아직 멀었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조씨 고문치사사건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무책임 못지않게 지휘감독책임을 엄중히 묻고 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근본대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김정길 법무부장관의 책임도 무겁다. 인권정부를 표방한 현 정부의 법무장관을 두 차례나 지내면서 검찰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방치한 책임을 모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건을 실무책임만 묻고 덮는 것은 국민 감정에 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