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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라운드 제로

Posted September. 12, 200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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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911 테러 1주년을 맞아 11일 (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하면서 이례적인 선택을 했다. 1년 전 기억을 되살리고 희생자를 추모하자면 테러당한 곳을 연설장소로 택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는 엉뚱하게도 뉴욕의 엘리스 섬에서 TV 카메라 앞에 섰다. 이유는 국민에게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 삼아 연설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911 테러를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한 장본인으로서 꼭 맞는 상징물을 찾은 셈이다. 그는 연설에서도 현재와 미래에 미국인은 두려움에 떨지 않는 자유민으로 살 것이라고 강조했다.

911을 잊지 않겠다는 미국인들의 생각은 테러와 자유의 여신상을 연계시키는 고도의 상징조작을 한 부시 대통령에 못지않은 것 같다. 그라운드 제로로 불리는 세계무역센터(WTC)가 서 있던 자리에서 11일 하루 종일 열린 추모행사는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미국인의 각오를 잘 보여준다. 희생자 2801명의 이름이 차례차례 불려지는 동안 미국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에 차례로 여객기가 부딪치는 순간부터 시작된 대참사를 떠올리며 부시 대통령과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라운드 제로 주변 건물에 걸린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미국인들의 심경을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미국인의 성격은 하와이에 가면 잘 알 수 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에 의해 진주만 기습을 당한 뒤 미국인은 일제히 진주만을 기억하라고 외쳤다. 21척의 군함이 침몰하고 347대의 전투기가 파괴되고 2409명의 군인이 전사하는 치욕을 당했으나 미국인은 그날을 잊는 대신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1100여명의 승무원과 함께 가라앉은 전함 애리조나의 침몰지역에는 박물관까지 만들었다. 그곳에 가면 지금도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미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면서 국민적 일체감을 만드는 것이 미국의 힘이다. 진주만 기습을 잊지 않아 2차 대전에서 승리했듯이 미국이 911을 잊지 않으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를 잊지 않는 습성을 고려하면 세계무역센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라운드 제로가 되듯이 테러범을 끝까지 응징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결심이 갑자기 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 그라운드 제로는 또 다른 진주만이 될 것인가.

방 형 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