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북중미골드컵대회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골드컵은 선수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증명하는 시기였다. 어떤 선수들은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고 어떤 선수들은 실패했다. 또 골드컵 때는 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이 아직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사실 한국팀의 플레이가 그렇게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한국 선수들이 상대팀을 효율적으로 공격할 만한 역량이나 파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는 건전한 비판을 수용한다. 내가 선수들을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코멘트도 환영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이 건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때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 팀의 분열을 시도하는 기사들이 나올 때는 매우 화가 났다. 예를 들면 내가 닥터 리와 싸웠다는 유의 기사들이다. 나는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와서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보라고 했지만 그 기자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닥터 리는 지금 나의 가장 친한 한국인 친구 중 한 명이다.
또 월드컵 개막 직전엔 최용수가 나의 팀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훈련을 거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는 그 신문사 기자에게 당신들은 기자도 아니다. 앞으로 내 인터뷰 때 들어오지도 말라고 했다. 너무 심했던 것 같아 다음날 사과를 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유의 기사가 나올 수 있나. 최용수는 부상으로 벤치 멤버였지만 팀이 승리할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그라운드로 뛰쳐나가 기뻐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여러분의 팀을 스스로 분열시키려는 의도를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로 지고 난 후 나는 언론의 강한 비판을 예상했다. 내가 당시 프랑스의 전술을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투톱 대신 원톱으로 나서는 바람에 미드필드에서 수적 열세를 보이며 코너킥과 프리킥을 너무 많이 허용했다. 나는 결과에 책임을 지며 이에 대한 비판을 즐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오히려 너무 부드러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비판은 수용한다. 언론은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장기적인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베스트 11을 확정하지 않고 선수들을 여러 포지션에 배치해가며 계속 테스트하자 언제까지 테스트만 할 거냐고 비난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여러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큰 역할을 해냈다.
나는 지난해 8월 체코전에서 또 0-5로 패배한 후에도 강팀과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팀을 상대로 승수를 쌓는 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강팀과 경기를 계속해야 강팀을 상대로 싸울 능력이 생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국팀은 월드컵 이후 한동안 슬럼프를 겪을 수밖에 없다. 세대교체 때문이다. 황선홍 홍명보 등 나이 많은 선수들이 은퇴하고 젊은 선수들이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떤 감독이 오든 그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젊은 선수들이 실수하더라도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선수 선발과 관련해서도 비난이 많았다. 김병지에게 힘든 시간(hard time)을 줬는데 이유가 있었다. 나는 선수들에게 개인 기술, 팀 전술, 정신력을 강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우쭐해 팀 플레이를 망치면 대표 선수로서의 자격이 없다. 안정환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이 때로는 스타 선수들을 너무 과대 포장해 발전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 안정환은 스스로 잘못을 고쳤고 이번 월드컵에서 만족할 만한 플레이를 펼쳤다. 김병지는 월드컵 직전 이운재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회를 못 줬다. 김병지가 이운재보다 못했기 때문은 아니다.
이동국이나 고종수 등 몇 사람이 리스트(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최종 엔트리를 결정하기까지 선수들을 대상으로 많은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는 결국 23명만을 선택해야 했다. 물론 27명이나 28명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모두들 엔트리에 포함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표팀 엔트리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나는 포지션별로 균형을 맞춰야만 한다. 내가 만약 스트라이커를 5명이나 6명 뽑는다면 그만큼 엔트리에서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팀의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래서 이동국이 빠진 것이다. 이동국은 다른 공격수들과의 경쟁에서 진 것이다. 고종수는 조금 다른 경우다. 그는 부상 때문에 경기를 할 만한 몸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동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리스트를 발표하기 전날 밤 이동국에게 불가피한 상황을 직접 전달했다. 2006년 월드컵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올 초 골드컵 때 동아일보 기자가 나에게 4년 더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면 한국축구를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국제축구연맹(FIFA)랭킹으로 톱10이라고 대답했다.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만 한국축구의 능력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 팀을 이끄는 감독이라면, 더군다나 한 국가를 대표하는 팀의 감독이라면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외로울 수 있다. 한국 언론과 축구팬도 이제는 이 점을 이해할 것이다. 새 감독이 오면 그에게 시간을 줘야 한다. 나는 그게 한국팀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