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공격에 이은 탄저균 공포, 교착상태에 빠진 전쟁. 장기화되는 비상사태는 미국인들의 일상에 불안을 심어놓았다. 하지만 지구촌의 장기 분쟁 지역 주민들이 그러하듯 미국인들도 장기 비상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미국인들의 일상의 변화를 본보 취재망과 AP 등 외신을 통해 들여다본다.
얼마전 이웃사람이 앞으로 수돗물을 마시지 말라고 진지하게 충고하더라. 테러리스트들이 물에 독약을 풀지 모른다면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변호사 필립 쉰(40)은 31일 본보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미국의 평범한 가정들에 닥친 테러의 파문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테러, 탄저균, 전쟁 등 어두운 뉴스를 외면하고 싶어한다며 집사람이 다니는 요가 강좌의 수강생이 최근 두배나 늘었다고 전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 교외에 사는 주부 데비 도우니(43)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주일간 우편함을 한번도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주 마나사스에 사는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안젤라 시브룩은 쇼핑몰에 갈 때 두 아이는 절대로 데려가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위험 소지가 있는 것은 무조건 피해 다닐 것이라는 게 시브룩씨의 다짐이다.
뉴욕의 변호사 마이클 트레몬트는 대도시는 예전에는 부와 출세를 상징하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공격의 대상이란 이미지가 강해졌다며 교외로 이사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주리주 캔자스의 줄리 엔더는 얼마전 작은 사고 때문에 출동한 소방관들이 자기들끼리 겁이 난다고 이야기하는걸 엿들었다며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우는 걸 보았을 때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이 똬리를 틀었다고 말했다.
UCLA대 전염병 전문가인 스콧 레인 박사는 어쩌면 우리가 과민반응을 보이는 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어떤 위협이 닥쳐올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생화학테러는 우리 일생의 주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앞날에 대한 비관론도 급속히 늘고 있다. CBS와 뉴욕타임스가 최근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추가 테러 공격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응답자 비율이 53%를 기록, 3주전에 비해 1.5배로 불어났다.
조심하되 비이성적인 공포는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사람도 많다. 오하이오주의 낸시 디켈은 이번 주말 예정대로 뉴욕으로 가족여행을 간다. 그는 주변에서 계획을 취소하라고 말렸지만 우리의 생활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시애틀의 약품거래 감독관인 존 스로프(58)는 매스컴이나 사람들이 다 왜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며 한줌도 안 되는 바보들 때문에 내 일상이 바뀔 수는 없다고 자신했다.
이 같은 다양한 반응에 대해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으며 현재 UCLA대 정치학과 교수인 마이클 듀카키스는 본보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9월11일 이후 미국은 분명히 변했다. 그러나 미국은 강하고 탄력적인 사회다. 불안 속에서도 미국인의 기본과 이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